[OTT뉴스=서보원 OTT 2기 리뷰어]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난파선을 경험한 사람은 잔잔한 바다 앞에서도 떤다."
잔잔한 바다도 이럴진데, 잔잔하지 않은 바다, 사면초가의 상황이라면 그 공포가 얼마나 크겠는가.
이번에 다룰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작전 중 하나인 덩케르크(혹은 됭케르크) 철수에 대한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다.
◆ 세 개의 공간, 하늘ㆍ땅ㆍ바다
영화는 총 3개의 공간에서 진행된다.
해안가, 바다, 그리고 하늘이다.
해안가에는 토미(핀 화이트헤드 분)를 비롯한 육군들이 덩케르크 탈출을 위해 잔교에 머물러 있고 연속되는 폭격과 배의 침몰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바다에선 도슨(마크 라이언스 분)이 조종하는 민간선 문스톤 호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작전을 돕기 위해 덩케르크로 향한다.
하늘에선 스핏파이어 조종사 파리어(톰 하디 분)와 콜린스(잭 로우든 분)가 덩케르크 항공 엄호를 위해 출격한다.
하늘, 땅, 바다라는 공간은 한 시간, 한 주, 하루라는 각기 다른 시간으로 전개되는데 공군과 육군, 그리고 민간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가 육군의 구출인 만큼 육군 위주의 이야기가 길게 전개되는데 영화상에서는 편집을 통해 각각 공평한 분량을 나눠 가진다.
각각의 처절한 사연을 담고 있는데 육지에서는 영국군인 척 하고 전장을 탈출하려는 프랑스 군인 깁슨(아니린 버나드 분)이, 바다에서는 전사한 공군 아들을 둔 도슨이, 하늘에서는 본인의 희생과 임무 완성을 저울질하는 파리어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 중에서 공군의 이야기가 가장 아름답게 그려진다.
하늘과 바다는 뒤집으면 똑같다는 말처럼, 전투기의 격추 장면을 치열하고 황홀하게 영상미로 승화시켰다.
덩케르크 해안에서 폭격으로 영국군이 희생당하는 장면에서 "우리 공군은 뭐해"라고 토로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비난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도, 심지어 실제로도 맹활약했지만 '작은 배들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민간 선박의 징발에 대한 임팩트가 강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당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스핏파이어 조종사인 파리어의 이야기를 감동적이고 여운이 남게 표현해 그들의 활약을 기렸다.
세 곳에서 다른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공통적으로 절망적이다.
각자의 이해관계와 전쟁으로 인해 육체적ㆍ정신적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기적처럼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국민들의 실망과 비난이 더 걱정되는 알렉스(해리 스타일스 분)처럼 대부분의 군인들은 끊임없이 불안해했다.
전쟁에서의 철수는 대부분 실패였다.
그러나,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덩케르크 철수는 적어도 실패가 아닌 위대한 승리였다.
220척의 군함과 650척의 선박들이 악천후와 폭격 사이에서 30만 명 이상을 구출해냈으니 말이다.
실제로도 덩케르크 철수는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연합군 대반격의 계기가 됐다.
◆ 피ㆍ적군은 없지만 잔인한 생존 드라마
덩케르크 작전은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인해 서부전선이 완전히 붕괴됐을 때, 영ㆍ프를 비롯한 연합군 30만여 명 이상의 병사를 구출할 목적으로 실행됐다.
정확히 338,226명의 병사가 구출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당연히 독일 군의 폭격이 있었다.
실제로는 팔, 다리가 분리되는 등 잔혹함, 그 자체였겠지만 영화상에서는 그 어떤 시체도 분리되지 않고 출혈을 보이지도 않는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의도한 바다.
대부분의 전쟁 영화는 고통받는 병사들과 피 칠갑을 통해 전쟁의 잔혹함을 알리곤 한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를 두고 "전쟁 영화가 아닌 현실의 시간을 재구성한 생존 드라마"라고 표현했는데 이처럼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병사들을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폭력적인 요소는 덜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처절하고 잔인한 전쟁이 담기지 않은 건 아니다.
컴퓨터그래픽기술(CG)을 싫어하는 놀란 감독답게 실제 해군 함선과 전투기를 공수해 촬영했고 배우들은 물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헤엄쳐야만 했다.
또한 전투기의 급강하 소리, 포성과 신음 소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전장 한복판에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덩케르크는 제9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향편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잊을만하면 나는 시계 초침 소리는 끊임없이 긴장하고 불안해야 하는 군인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12세 관람가라는 것이 이해될 정도로 시각적으로 잔인하진 않지만 곱씹으며 몰입하다 보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괴로운 장면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민간선의 작전 합류를 보고 희망을 되찾듯, 가장 큰 희망은 또 다른 사람이라는 점에서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가 아닌 생존 드라마가 맞다.
◆ 덩케르크가 더 궁금하다면, <다키스트 아워>
2017년에 개봉한 <덩케르크>는 비슷한 시기의 <다키스트 아워>를 통해 보충된다.
<다키스트 아워>는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만 분)이 덩케르크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정치적인 알력 싸움을 하는 과정을 담았다.
연합군이 항복을 선언하고 영국 내 다른 정치인들 역시 독일과의 굴욕적인 평화 협정을 제안하는 등 말 그대로 '가장 어두운 시기'를 그렸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총리로 임명된 처칠은 국왕 조지 6세(벤 멘델존 역)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의심 속에 전력을 재정비한다.
<덩케르크>가 군인의 시점이라면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을 비롯한 영국 내 정치인들의 시점이다.
패색이 짙어지면서 나오는 전쟁 회의론과 책임 전가는 처칠을 더더욱 어렵게 만드는데 제1차 세계 대전 때의 실수로 인해 비난을 받은 처칠의 입체적인 면모를 잘 드러낸다.
결말을 알기 때문에 나름 안심하면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덩케르크>라면 <다키스트 아워>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복잡 미묘하게 알아채는 느낌이 되겠다.
한편 <덩케르크>와 <다키스트 아워> 모두 넷플릭스에서 관람 가능하다.
심지어 <덩케르크>는 2월 9일, IMAX로 재개봉됐다.
실감 나는 전장의 상황을 보고 싶다면 당장 '용아맥'을 찾아보자!
넷플릭스 <덩케르크> ▶ 바로가기
넷플릭스 <다키스트 아워>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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