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김현하 OTT 평론가]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나사의 회전
유령은 존재할까?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영역인만큼 유령의 실존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가위 눌리는 증상이나 심령사진 같은 것들을 증거로 이들이 실존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있고, 이는 단지 심리와 관련된 뇌의 착각이고 유령은 실존하지 않는다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유령의 실존 여부와 관련해서 의견이 분분한 것은 비단 현실만의 일은 아니다.
<블라이 저택의 유령>의 원작 소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에서도 유령의 존재 유무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됐다.
<나사의 회전>은 의도적으로 이중적 의미로 독해되도록 설계된 작품이다.
이에 따라 소설의 내용은 어린 남매를 유령들의 위협으로부터 지킨 한 가정교사의 분투기가 될 수도, 여성억압적인 빅토리아 시대 풍조로 아래에서 가해자가 된 히스테리 환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이 두 가지 해석 중에서 확고하게 한쪽 의견을 따른다.
유령은 실존한다.
이 이야기는 유령들의 위협으로부터 남매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가정교사의 분투기다.
또 한편으로는 유령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 심리와의 연결성 또한 놓지 않았다.
◆ 블라이 저택의 유령
창작물에서 유령은 어떤 존재일까?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블라이 저택에 나타나는 유령들의 정체를 밝히려 했다.
프로이트 계열의 학자는 유령을 여성의 질병, 히스테리라고 봤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유산계급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라고 보기도 했다.
혹자는 영국이 식민지에게 가지는 죄의식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가정교사의 계급불안에 대한 현신이라고 해석하는 등 그 해석은 다양하다.
하지만 이 해석들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바는 바로 유령이 '결핍'과 '불완전성'의 구현이라는 것이다.
어느 창작물이든 유령은 강자의 모습을 띄고 있지 않다.
처녀귀신, 인형귀신, 아이귀신의 이미지는 흔하지만 강하고 건강한 남성의 모습을 한 유령의 이미지는 드물다.
한국에서도 유령은 약자가 가진 '한(恨)'의 집결체다.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원작 소설 <나사의 회전> 외에도 작가 헨리 제임스의 다른 단편인 <낡은 옷의 로맨스와 융단 속의 무늬>를 차용해 유령들이 세상에 남은 이유를 명백히 보여준다.
바로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배신당하고, 사랑했던 기억과 아집만 남은 블라이 저택의 원 주인 '바이올라 로이드(케이트 시걸 분)'가 유령들을 현세에 머물게 하는 중력이 된 것이다.
◆ 사랑이라는 이름의 중력
바이올라는 가문의 권위와 사랑하는 가족의 안위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믿었던 동생과 남편이 재혼하고, 딸이 남겨준 유산을 버리면서 그녀는 세상에 남겠다는 집념 외의 모든 것을 잊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주기적으로 블라이 저택으로 들어와 희생자들을 자신들과 같은 유령으로 만든다.
유령이 된 자들은 모두 현세에 미련이 남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다.
대표적인 유령 퀸트(올리버 잭슨 코웬 분), 제셀 양(타히라 샤리프 분)의 경우 서로에 대한 사랑이 바로 그 미련이다.
해나 그로스(트니아 밀러 분)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계속되는 세상에 빠져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주인공인 대니 클레이튼(빅토리아 페드레티 분)과 그 고용주인 헨리 윈그레이브(헨리 토마스 분)는 살아있지만, 그들이 사랑하던 사람은 유령과 다름없는 '환영'의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그들 앞에 나타난다.
블라이에서 유령은 미련, 특히 사랑에 대한 미련이다.
이 미련은 바이올라로 대변되는 저택의 저주가 사라져도 지속된다.
대니의 이타적인 선택으로 인해 원념은 사라지고 더 이상 블라이에서 사람들이 죽는 일은 없지만, 그녀를 사랑했던 제이미(아멜리아 이브 분)는 여전히 문을 열고 수도꼭지를 틀면서 대니의 유령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바란다.
◆ 호러 드라마가 아닌 사랑 드라마
계속 언급했다시피 이 드라마를 묶는 큰 주제는 사랑, 그것도 상당히 미련 넘치는 사랑이다.
작중 내에서 등장인물들의 입으로 '이 이야기는 호러 이야기 아니라 사랑 이야기다'라는 대사가 언급될 정도다.
그렇기에 원작 소설이나 포스터의 분위기처럼 제대로 된 유령 스토리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실망할 부분이 확실히 있다.
게다가 어떤 부분은 원작자인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모두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당혹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기 위해 굳이 <나사의 회전>을 원작으로 채택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사의 회전> 속 가정교사를 히스테리 환자로 해석하는 창작물들은 이미 충분히 많다.
영화 <더 터닝>과 <이노센츠>, 그리고 TV 드라마 <나사의 회전>도 있다.
이제 남매를 진심으로 지키고 싶어했던 가정교사의 선의를 재조명해줄 때가 도래했다.
이타적인 사랑에 커다란 확신을 가진 제작자가 각색한 이야기,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넷플릭스 <블라이 저택의 유령>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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