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감성이 그리운 날엔, 다소 아쉽더라도 <기적>

넷플릭스ㆍ웨이브 : <기적>

박정현 승인 2022.01.03 08:47 의견 0
도서관에 함께 있는 준경(박정민 분)과 라희(임윤아 분). 사진 네이버 영화


[OTT뉴스=박정현 OTT 평론가] 이따금 가슴 따스한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온다.

일상에 지치고 일에 치였을 때, 타인에게 상처받았을 때가 특히 그런데 필자가 평소라면 보지 않았을 <기적>이란 영화를 택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솔직하게 말하고 시작하겠다. 필자는 한국형 신파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승전 "울어라"로 이어가는 신파영화를 보다가 그 감정선에 취해 배우의 연기에 빠져 울게 되더라도 금세 분해하곤 했다.

"울어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울고 싶어서였다.

<기적>은 신파영화임이 분명했고, 그래서 필자는 <기적>을 별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다.

자전거 타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준경과 라희.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밖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은 '기찻길'이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준경(박정민 분)의 꿈은 마을에 기차역을 만드는 것이다.

기찻길을 걸어서 다음 기차역으로 가야만 하는 그 위험한 길목에서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죽었고 준경의 가족마저 그 사건으로 희생됐기 때문이다

준경의 아버지 태윤(이성민 분)은 기관사로 본인의 상황에 체념하고 준경을 말리려고 애쓰지만, 준경은 굴하지 않고 청와대에 무수하게 편지를 보낸다.

자그마한 마을에서 편지를 보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준경이 가진 또 다른 재능이 믿어지지 않는 기적을 가능하게 한다.

어떠한 재능인지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쯤에서 가려두겠다.

책을 읽는 준경과 그런 준경을 카메라로 찍는 라희. 사진 네이버 영화


이 영화 <기적>은 다행스럽게도 신파보다는 발랄한 감동의 감정선을 취했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세 가지 관계에 주목해서며 보면 영화를 조금 더 재밌게 볼 수 있다.

바로 준경과 준경의 누나 보경(이수경 분)의 관계, 준경과 아버지 태윤의 관계, 준경과 '자칭 뮤즈' 라희(임윤아 분)의 관계다.

첫째, 준경과 보경의 경우 '단 하나뿐인 지지자'다.

보경은 자신의 학업을 포기하고 동생을 돌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동생과 그의 재능을 아꼈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 마음은 변치 않는다.

오랜 시간 통학하면서 친구 하나 없이 살아가는 준경이 속마음을 다 털어놓는 유일한 친구이자 끈끈한 가족이다.

준경이 무엇을 하든, 어떠한 모습이든 상관없이 사랑해 줄 누구보다 따뜻한 인연이다.

둘째, 준경과 준경 아버지의 경우 '때를 놓친 애증'이다.

두 사람은 따로 떨어져 지내며 서로 간에 대화도 잘 나누지 않는다.

준경은 아버지를 원하고, 아버지 역시 준경을 원하지만 서로에게 닿지 못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것은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평생 하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 전체에 걸쳐 나누며 뜨겁게 화해한다.

셋째, 준경과 라희의 경우 '산뜻한 첫사랑'이다.

감정 표현을 잘 못 하고 잘 움츠러드는 준경에 비해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라희는 애정표현에도 스스럼이 없다.

그녀가 그를 좋아하는 건 빛나는 재능이 있어서, 남들과 달라 보여서고 그 사람에게 영감이 되는 '뮤즈'가 되고 싶다는 게 그녀의 꿈이다.

자격지심 하나 없이 맑게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타인의 사랑을 바라기에 앞서 본인의 마음부터 표현하는 적극적인 사람을 그 누구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소 소극적인 준경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라희의 관계가 이 영화 <기적>을 더욱 산뜻하고 흥미롭게 만든다.

다만 한 영화 안에서 세 관계가 중첩되는 데다가 준경에게는 기차역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슈 외에 이루고자 하는 꿈까지 있다보니 영화가 산만해졌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적'이라는 키워드로 통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들을 엮고 또 엮어서 종합 선물세트처럼 보여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는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 감동의 발자국을 남기기에는 다소 애매한 영화다.

선택과 집중으로 감동과 이야기의 완성도를 올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보면 좋을 영화라 리뷰로 소개한다.

요 근래 새롭게 나온 영화, 드라마에서 따스한 감성을 본 기억이 어렴풋해서다.

발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좀 더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대중이 반응하다 보니 이런 말랑말랑한 감성에서는 멀어졌던 게 아닐까.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잊고 살았던 따스함을 느껴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미술관 옆 동물원>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90년대 한국 영화 감수성이 그리운 날 넷플릭스에서 가볍게 재생버튼을 눌러보길 권한다.

<기적> ▶ 바로가기(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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