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강지우 OTT 평론가]
이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려움으로 몰아넣는다.
- 블레이즈 파스칼
우주에 관한 영화가 수두룩한데도 계속해서 새로운 상상력을 더하며 다양한 주제로 제작되는 이유는 여전히 인간에게 우주란 의문 가득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지구를 찾는 여정을 그린 <인터스텔라>, 에일리언 세계관을 확장한 <프로메테우스>, 화성에서 살아남기 <마션>, 우주에 대한 발칙한 상상력 <스타트랙> 등 우주라는 소재도 이토록 다양하게 나뉠 수가 있다니.
오늘 리뷰할 세 작품은 이 광활한 우주에 나 혼자 남은 듯한 외로움과 고독을 그려낸 작품들이다.
화려한 CG의 외계인이라든가, 미스테리한 스릴이 가득한 우주 영화를 기대하는 분들이라면 그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지만,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 속에서 인간 내면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그래비티>와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봐야할 영화들이다.
세 작품 속 주인공들이 무엇을 위해 우주를 홀로 떠돌고 있으며, 그들의 복잡한 내면이 우주에서 어떻게 분출되는지에 집중하며 영화를 감상해보자.
◆ 달 기지 '사랑(SARANG)'에 고립되다, <더 문>
지구의 자원 부족으로 달에 있는 자원채굴 기지 '사랑'에서 홀로 헬륨 채굴 임무를 맡은 주인공 샘(샘 록웰 분).
곧 임무 기간인 3년을 다 채워가고 이제 2주면 다시 지구로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자꾸 어떤 여자의 환영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상하게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지구와의 통신이 모두 끊긴 상황에서 유일한 대화상대인 인공지능 컴퓨터 '거티(목소리 연기 케빈 스페이시 분)'조차 수상하게 느껴진다.
불안함이 고조되는 와중, 샘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또 다른 샘, 즉 자신의 복제인간과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인간보다 인간다운 인공지능 기계, 그저 소모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복제인간과 같은 철학적 소재로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진다.
또 주인공 샘이 진실을 파헤쳐갈수록 느끼는 감정과 외로움이 잘 표현되어 있어 영화가 끝난 후에는 왠지 쓸쓸함마저 느껴진다.
특이한 점은 달 기지의 이름이 '사랑'인 데다, 실제 기지와 우주복에서도 한글로 '사랑'이라고 적혀있다.
'안녕하세요'와 같은 한국어가 나오기도 하는데, 감독의 전 여자친구가 한국인이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고 혹은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한국 영화를 좋아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더 문>을 제작한 감독은 '던칸 존스'로, 이 영화 다음으로 <소스 코드>를 제작하며 이름을 알렸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뮤트>를 통해 <더 문>의 세계관을 공유한 또 다른 우주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뮤트>에서 <더 문>의 샘이 등장한다고 하니, <더 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뮤트>까지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 인간의 욕망과 금기를 표현한 우주식 에덴 동산, <하이 라이프>
우주 공간을 떠도는 우주선에 고립되어 사형당하는 대신 과학 실험 대상이 된 사형수들.
그들을 실험하는 과학자 딥스(줄리엣 비노쉬 분)또한 과거에 인간을 대상으로 비윤리적 실험을 진행해 범죄자가 된 사람이다.
딥스는 실험 대상인 사형수들의 욕구를 철저히 통제하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실험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한다.
그녀의 비윤리적인 실험으로 결국 우주선 안에서 여자아이 윌로(제시 로스 분)가 태어나는데, 주인공 몬테(로버트 패틴슨 분)는 그 아이가 곧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 <하이 라이프>는 다소 난해하고 높은 수위의 장면 때문에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 초반 몬테의 대사를 통해 이 영화는 인간의 '금기(taboo)'에 대해 다루고 있음을 알려준다.
주인공 몬테가 자신의 여동생을 살해한 것, 욕망을 참지 못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형수들, 비윤리적 실험을 하는 과학자 등 금기를 깨트린 인간들이 우주선이라는 공간에 모여 블랙홀이라는 어둠으로 나아간다.
영화 여기저기에 성경의 요소들을 상징하는 소재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더 쉽게 영화를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이 영화는 SF 장르라고 하기엔 우주나 우주 과학에 대한 묘사보다는 인간의 욕망, 심리나 탄생과 죽음이라는 소재에 대해 공들여 묘사한 작품이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도 한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을 연출한 클레어 드니 감독만의 뚜렷한 작품 세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 해왕성에 도달했을 때 깨달은 것은, <애드 아스트라>
미 육군 소령 로이(브래드 피트 분)는 웬만해서는 심장 박동이 80을 넘지 않는 타고난 군인이다.
지구에 대규모 정전과 통신장애로 피해가 속출하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임무를 맡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과거 태양계 외곽 탐사 프로젝트인 '리마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죽은 아버지가 사실은 살아있으며, 지구에서 발생하는 써지 현상이 아버지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는 태양계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현 상황을 안정시키고 아버지를 다시 지구로 데려오기 위해 43억 2,253만 km 떨어져있는 해왕성으로 향한다.
영화의 중간중간 로이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며 진실이 밝혀짐에 따라 점차 혼란스러워지는 로이의 심리를 따라갈 수 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과 제작을 겸한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와 관련된 풍부한 볼거리는 물론, 자신에게는 영웅이었던 아버지를 찾아 한 남자의 혼란스러움과 고독을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다만, 지구에서 해왕성까지 79일밖에 걸린지 않는다거나, 로이가 해왕성에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탈출을 시도할 때의 모습은 물리학이나 우주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가 봐도 과학적 오류가 가득한 설정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학적 오류에 대해 민감하지 않고, 그저 영화 자체의 스토리와 주인공 내면의 변화에 집중해서 감상한다면 충분히 즐길만한 작품이다.
이상 우주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고독을 그린 영화 세 편을 리뷰해봤다.
세 작품 모두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임이 분명하기에, 스릴이 가득한 SF영화는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선선해지는 가을밤, 나 홀로 조용한 우주에 떠다니는 느낌을 받고싶다면 <더 문>, <하이 라이프>, <애드 아스트라>를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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