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데드 투 미>, <틴에이지 바운티 헌터스>, <파이어플라이 레인>의 주인공들이다. 사진 IMDB


[OTT뉴스=조수빈 OTT 평론가] 최근 넷플릭스가 다양성을 키워드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자사 신작들만 보더라도 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많아졌음을 체감할 수 있으며, 업계 최초로 다양성 리포트까지 발표하며 다양성 확대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해당 리포트에 따르면 실제로 제작·출연진 구성에서 유색인종과 여성의 비율이 매년 개선됐다고 한다.

콘텐츠의 다양성이라 하면 여러 가지 분야가 있겠지만, 이번 리뷰에서는 넷플릭스가 특히 두각을 나타내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 주연' 시리즈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

<데드 투 미> : 비밀 위에 쌓아 올린 눈물겨운 우정이란

뺑소니 사고로 남편을 잃은 젠(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 분)은 치유 모임에서 우연히 주디(린다 카델리니 분)를 만나 친구가 된다.

평생을 알고 지낸 친구인 양 끈끈한 우정을 자랑하던 이들은 결국 한 지붕 아래 살기에 이른다.

젠은 남편의 사고를 조사하던 중 믿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하게 되고, 그들만의 비밀 위에서 젠과 주디의 믿음은 더욱더 단단해진다.

하지만 감춰둔 진실은 점점 커져만 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데드 투 미>의 포스터, 흘러나오는 핏빛 와인이 스릴러 장르임을 짐작케 한다. 사진 IMDB


이들이 나눈 우정의 근간은 서로의 불완전함에 있다.

냉소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젠과, 상냥하지만 우유부단한 주디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서로의 모습에 끌린다.

과거의 아픔까지 공유한 이들 앞에 밝혀진 끔찍한 진실은 오히려 관계성을 더 공고히 하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젠과 두 아들, 그리고 주디의 한집살이는 이른바 대안가족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정을 근간으로 한 이 가족은 젠더 권력의 영향 밖에서 오로지 두 여성의 상보적인 관계 아래 성장해 나간다.

이런 가족의 모습은 보수적 시선 아래에서 결코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에 편입되지 못하지만, 남성에 의한 거짓말과 폭력으로 뒤엉킨 과거에 비하면 더 나은 삶의 방식일지 모른다.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버디 무비의 성별을 뒤집은 <데드 투 미>는 거침없는 여성 캐릭터를 필두로 여성들의 사랑과 우정, 연대를 그린다.

캐릭터의 매력과 이들의 관계성을 통해 상대적으로 약한 스릴러적 요소들을 충분히 보완한다.

또한, 필터링 없는 현실적 언어 사용이 돋보이는데, 비속어의 맛을 잘 살려낸 번역 자막도 한 가지 재미다.

<데드 투 미>는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서 시즌 2까지 공개되었으며, 시즌 3으로 이야기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틴에이지 바운티 헌터스> : 미션스쿨 쌍둥이의 이중생활기

늦은 밤, 아빠 차를 몰던 10대 쌍둥이 자매가 교통사고를 낸다.

사고의 피해자는 다름 아닌 현상 수배범.

얼떨결에 받은 현상금이 꽤 쏠쏠하다.

스털링(매디 필립스 분)과 블레어(앤절리카 벳 펠리니 분) 자매는 망가진 차 수리비를 충당하기 위해 현상금 사냥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스털링(매디 필립스 분)과 블레어(앤절리카 벳 펠리니 분) 자매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척 하고 있다. 사진 IMDB


하이틴 수사물이라는 독특한 장르의 이 작품은 인물들의 이중성에서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보수적인 크리스천 사립 학교 학생인 자매는 BTS를 좋아하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평범한 여고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방과 후 이들이 잡는 것은 아이스크림 스쿱이 아니라 범죄자다.

매일 밤 허술한 알리바이 뒤에서 벌어지는 현상금 사냥은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것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점이 웃음 포인트다.

하이틴 물 답게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성 정체성의 혼란도 빼놓지 않고 그린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신선한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다.

현상금 사냥 중에도 온통 이성에 대한 생각뿐인 자매는 처녀성을 잃는 것이 최대 관심사다.

게다가 스털링은 자신의 숙적인 에이프릴과 사랑에 빠지며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이렇게 자매는 성경 말씀에 따라 살고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리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성적 지향을 깨닫고 방황하거나 우울함에 빠지는 장면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쿨하게 인정하며 공개 데이트까지 즐긴다.

감정에 솔직하고 당당한 이들의 모습은 이 한 대사로 집약된다.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하나님이 날 벌할 거라 생각하지 않아"

10대 소녀의 고민과 자아 발견을 수사물이라는 장르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틴에이지 바운티 헌터스>는 탄탄한 개연성과 빠른 전개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한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즌 1이 처음이자 마지막 시즌이 되었으므로, 아껴보는 것을 추천한다.

<파이어플라이 레인> : 영원한 우정이 과연 존재할까

유명 토크쇼 진행자 털리(캐서린 하이글 분)와 경력단절 극복을 꿈꾸는 케이트(사라 초크 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절친이다.

30년 전, 인싸 전학생과 소심한 잠자리 안경 소녀의 모습으로 처음 만난 이들은 자신과 상반된 서로에게 금세 매료되었다.

너무도 다른 성향 탓에 다투기도 했지만, 그러한 차이는 그들이 한 걸음 성장하는 데 밑거름으로 작용하곤 했다.

하지만 모든 것엔 예외가 있는 법. 모종의 계기로 이들 사이가 틀어지고 만다.

털리(캐서린 하이글 분)와 케이트(사라 초크 분)의 어린시절, 함께 스쿨버스에 타고 있다. 사진 IMDB


<파이어플라이 레인>의 매력은 작품의 현실성에 있다.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털리의 유년기 트라우마와 케이트의 이혼 및 자신감 회복 문제는 누구나 공감할 법 한 매우 보편적인 고민들이다.

주인공들은 절대 완벽하지 않으며 그들의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도, 털어내지도 못한다.

이러한 모습은 나, 혹은 내 친구의 문제로 언제든 치환될 수 있기에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또한, 작품은 결혼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과 직장 내 성희롱 등 뉴스로 접해도 식상할 만한 이슈들을 곁들임으로써 작품의 현실적 무게를 더한다.

인물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모습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어도 이들의 태생적인 성격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다름은 필연적으로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결과로 이어지며, 때로는 결정적인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30년의 사건들을 오가는 플래시백 속에서 현재의 털리와 케이트는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완벽한 남남으로 그려진다.

영혼의 단짝이었던 이들에게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세월에 가려졌던 진실을 만날 다음 시즌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