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이민주 OTT 1기 리뷰어] OTT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가끔 신기한 영화들과 마주치게 된다.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별로 관심도 주지 않았을 것 같은 영화를 발견하고 순간의 끌림에 충동적으로 재생 버튼을 눌러버리고 만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만남이어서 그런 걸까.
때로는 이렇게 보게 된 영화가 전혀 새로운 관점과 고민거리를 안겨주기도 한다.
엠마 스톤, 휴 잭맨, 나오미 왓츠, 케이트 윈슬렛, 우마 서먼, 리차드 기어 등.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배우들이 나와 B급 감성과 블랙 유머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 <무비43>.
주말에 킬킬거리며 시간이나 때울 생각으로 보기 시작한 이 영화가 나를 엄청난 고민에 빠지도록 만들 줄이야.
◆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무비43>이라서 죄송합니다?
나는 대학원생이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학부 시절 학점도 좋지 않은 주제에 나는 대학원생이 됐다.
기왕 공부를 더 하기로 했으니 열심히 해서 몇 년 후엔 제2의 이동진 평론가가 되겠다는 깜찍한 꿈과 함께 나는 무작정 영화 비평과 관련된 어려운 수업을 모조리 신청해버렸고, 눈물로 점철된 첫 학기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학과사무실에서 조교 업무를 보고 있던 내게 한 박사과정 선생님께서 연구 분야에 관해 물으셨다.
왓챠에서 영화 감상 시간 상위 1%에 빛나는 나는 주저 없이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비평에 관심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분이 대뜸 하신 말이 걸작이었다.
"아 그러면 어려운 영화 좋아하시겠네요? 고다르 영화 같은 거 많이 보세요?"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험상궂은 인상의 요정이 나와 총질을 해대고, 온갖 난잡한 성인 유머가 난무하는 <무비43>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예술 영화들을 접한 경험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만 치부를 들켜버린 사춘기 소년처럼 얼굴이 벌게져서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다 다시 학과사무실에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나는 심각한 고민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방금 내가 왜 부끄러움을 느낀 거지?
고다르의 영화는 영양가 있는 영화인데 <무비43>은 그렇지 않아서?
아니, 애초에 영화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거지?
◆ 영양가 있는 영화 vs 영양가 없는 영화
물론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타임 킬링 영화들과 누벨바그 거장의 영화들이 대등한 미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도대체 어떤 영화가 영양가 있는 영화인지 함께 생각해볼 필요는 있지 않냐는 것이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재미있는 영화와 어려운 영화. 가벼운 영화와 무거운 영화.
이렇게 칼로 사과를 자르듯 구분할 수 있다면 참 속이 편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영화가 가질 수 있는 가치는 수없이 많으며,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킬킬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봐서는 안 되는 것이며, 삶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사유를 즐기고 싶을 때 <무비43>을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너무 뻔한 소리 아니냐고?
누군가는 <무비43> 속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사실 다 맞는 소리다.
아직 대학원에 온 지 한 학기밖에 되지 않아서 이 정도의 결론이 최선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과연 영화를 평가하는 잣대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날이 내 평생에 있을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답을 내리지 못해서 이 글을 쓰게 됐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만큼이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해진 답이 없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을 먹고 영화라는 나무가 쑥쑥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이야기한 무거운 주제와는 별개로 이 영화는 여러모로 웃기고 정신없는 영화이다.
나처럼 고민에 잠겨 영화의 가치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만, 사실 이 영화는 생각 없이 즐기기에 최적이다.
어떤 식으로든 즐거운 감상이 되기를.
영화 <무비43>은 왓챠에서 볼 수 있다.
<무비43> ▶ 바로가기(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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