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김현하 OTT 1기 리뷰어] 다른 서사 매체와 구분되는 영화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
아마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예산이 들어가 시청각적인 볼 거리가 더 풍부하고 시공간의 제약이 덜하다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만의 이점에 일부러 제약을 걸어, 연극이나 드라마처럼 제한된 시공간 내에 존재하는 등장인물들의 연기력과 대본의 촘촘함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들이 있다.
*해당 리뷰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종교에 대한 발칙한 해석, <맨 프럼 어스>
10년 동안의 교수 생활을 청산하고 이사를 가려는 주인공 존 올드맨(존 빌링슬리 분).
그는 동료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마련한 환송회에서 충격적인 선언을 한다.
바로 자신이 기원전 140세기, 크로마뇽인 시절부터 늙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온 불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 속 인물을 만나봤냐는 동료들의 말에 존은 대답을 피하다가 자신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서구식으로 바꿔 로마에 가르치려 애쓰다 십자가형에 처하게 된 것이라고 밝힌다.
즉, 사람들이 지금껏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추앙해온 사람은 바로 동료들 눈 앞에 있는 존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이 두드러진다.
영화 내에서 계속 믿지 못할 주제를 처음 제시하는 것은 주인공인 존이지만, 그의 발언을 '그럴 듯한 신빙성 있는 발언'으로 만들어주는 기능은 철저히 주변 인물들이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의 동료 교수들은 신학ㆍ생물학ㆍ심리학 등 각자의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로, 처음에는 존의 발언에 경악하지만 곧 학계에서 그의 발언을 강화해줄 증거를 찾아 경악은 두려움으로 바뀐다.
존이 스스로 예수임을 인정한 발언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두들 그의 정체에 의심을 보내지만, '예수 불자론'이나 유대교의 '토라'가 함무라비 법전을 거의 그대로 옮긴 일화를 얘기하는 신학자에 의해 의심은 확신으로 변한다.
예수가 신약 성경에서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생각하면 상황은 두 배로 흥미로워진다.
그가 그 자리에 모인 어떠한 사람들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사실은 결말부에 다시 한 번 다른 인물에 의해 입증된다.
<맨 프럼 어스>의 죽음으로 끝나는 최후의 입증은 왓챠와 웨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 SM 관계와 예술에 대해 냉소적으로 꼬집는 <모피를 입은 비너스>
'마조히즘' 단어의 기원이 된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소설,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연극화하려는 작가 토마스(마티유 아말리끄 분).
연극의 여자 주인공 '반다' 캐스팅을 끝마치고 집으로 가려던 도중, 여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반다(엠마뉘엘 세니에르 분)가 오디션을 보러 찾아온다.
토마스는 행색이 초라하고 태도가 불량해보이는 반다에게 회의적으로 대하지만, 곧 대사를 완벽하게 암기하고 소화하는 그녀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소설 속의 비너스 여신이 현신한 것과 같은 그녀는 대본을 계속 읽다가 결말부에서 토마스에게 냉소적으로 말한다.
"이거 완전 여성 혐오적이네!"
소설과 연극 속의 여주인공 반다는 '펨돔', 즉 '여자 주인님'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 관계에서 언뜻 보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주인님'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바로 소설의 주인공 '쿠솀스키'가 욕망하는 주인ㆍ노예의 성적 판타지 안에서 만이다.
여주인공 반다는 성적으로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쿠솀스키에 의해 '백작'과 같은 마초적인 남성을 성적으로 원하고 '주인'이 되어 노예를 부리도록 강요된 것이다.
토마스는 바로 이 점을 파악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극본 내에서 반다가 결국 역으로 쿠솀스키에게 벌을 받는 결말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배우 반다의 몸으로 강림한 비너스 여신은 또다시 토마스의 이런 점을 간파하여 그를 벌하러 찾아온다.
반다가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어떤 부분이 여성의 자유로운 성적 욕망을 빙자한 남성 욕망의 실현임을 지적하는지, 왓챠에서 확인해보자.
◆ 우리 게임 하나 할까? <완벽한 타인>
상간녀와의 메시지가 들켜 이혼당한 친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의 휴대폰에 온 모든 연락을 공개하는 게임을 시작한 7명의 친구들.
하지만 이 7명은 모두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던 치부가 있었고, 게임이 진행될수록 이들의 관계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해당 영화는 같은 집단이라고 생각한 1차 집단 내에서도 얼마나 다양하게 계급과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얼핏 보면 영화 결말부의 파국은 단순히 인물 개개인의 부도덕함 혹은 사정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같은 위치에 있고 단순히 개인 호오의 차이만 존재한다면 영배(윤경호 분)와 태수(유해진 분)가 폰을 바꾼 것이 그렇게 큰 파국을 초래했을까?
세경(송하윤 분)이 다른 여성인물들 사이에서 겉도는 것에 그녀의 나이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석호(조진웅 분)가 자신의 아내에게 솔직하지 못하는 것의 배경에는 예진(김지수 분)과의 집안 차이가 존재한다.
이렇게 7명의 등장인물은 경제능력의 유무ㆍ사회적 지위 차이ㆍ나이ㆍ성적 지향성ㆍ성별 등 사회의 여러가지 기준으로 갈리고, 이렇게 세분화된 카테고리 내에서 한 인물과 동일한 다른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들 다른 카테고리의 '완벽한 타인'인 것이다.
<완벽한 타인>은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작권자 ⓒ OTT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ott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