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홍지후 OTT 1기 리뷰어] 여고생들은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이, 드라마나 영화에 비치는 '여고'는 상큼하고, 밝고, 명랑하다.
한국의 최장수 공포 시리즈물인 <여고괴담>은 '여고'의 어두운 현실을 그리며 여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학교 안의 부조리를 고발해왔다.
<여고괴담> 시리즈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 역시 여고 안에서 일어난 비극을 발로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포 영화다.
이 영화는 21세기의 첫날이 밝기도 전에, 여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퀴어 영화라는 점에서 한 층 대담함이 엿보인다.
◆ '학교'는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나
종이 울리고, 반장이 일어나 '차렷, 경례'를 외치면 학생들은 일제히 일어나 인사한다.
경례는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공격의 의사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동작이다.
학교 안에서, 수업을 여는 '경례'로부터 교사와 학생 사이의 위계가 생겨난다.
'가르침'의 주체와 대상인 교사와 학생이, 학교에서는 높은 사람과 그보다는 낮은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 안의 교사들은 아무렇지 않게, 학생들에게 상처를 낸다.
교사들은 여고생인 지원(공효진)에게 '절벽'이라고 성희롱을 하는가 하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학생의 뺨을 때린다.
우리는 모두 학교에서 선생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말도 잘 들어주어야 한다고 배우지 않는 걸까?
학생이 교사를 존중하듯 교사도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야 한다, 는 명제는 지금까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얼마 전, 인천의 한 초등교사가 초등 2학년 학생들을 여러 차례 폭행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스쿨 미투의 시발점이 된 서울 'ㅇ'여고 교사는 학생의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의 성폭력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두 사건 모두 올해 상반기에 보도된 뉴스다.
1999년 여고의 괴담이 2021년의 학교에서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을 힘으로 제압하려 하고, 자의적인 기준 안에 가두려 한다.
일 년에 한 번씩 해야 하는 '신체검사'도 그렇다.
학교는 숫자만으로, 각자 다른 성장의 속도와 방향을 지닌 학생들의 성장을 정의한다.
신체검사 시간, 학생들은 더 높은 키를 위해 까치발을 들고, 날씬해지기 위해 종일 포도만 먹는 식이조절을 한다.
신체검사는 학교가 학생에게 가하는 무언의 압박이다. 사회가 바라는 여자의 기준에 부합하라는 압박.
◆ 효신이 '학교'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교실에서 신체검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효신(박예진)은 옥상에 올라가 신아(이영진)을 기다린다.
학교의 압박과 폭력으로부터 도망친 그들은, 친구 이상의 감정을 키워가고, 종국에는 친구들 앞에서 사랑을 증명하기도 한다.
이른바 '커밍아웃'으로 인해 그들은 엄청난 야유를 받는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신아가 효신을 점점 멀리하며, 둘 사이는 점차 멀어진다.
효신은 끝내, 학교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효신은 왜 죽었을까. 임신해서, 원래부터 그런 애여서, 음침해서, 신아가 효신을 멀리해서.
영화 안팎에는,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추측들이 난무한다.
영화는 효신의 자살 이후에도 목소리와 환영 등으로 효신을 등장시키며 효신의 존재를 일깨운다.
공포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자살하면 원한의 대상을 찾아 복수하지만, <여고괴담2> 속의 효진은 누구에게도 복수하지 않는다.
효신이 누구 때문에 죽었을까? 효신의 죽음 앞에, '학교' 안의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앞에 나서 효신을 괴롭혔던 연안(김재인), 효신과 손잡았다고 시은의 뺨을 때린 교사, 재수 없다고 소근대던 반 아이들까지. '학교' 안의 모두가 공범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서의 일차적인 의미도 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서 지내는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겐 그야말로 하나의 세계이다.
그 세계 속에서 효신과 신아는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철저히 소외된다.
'학교'가 세워놓은 규칙과 규율을 조금 비껴간 효신과 시은은 비난과 폭력의 대상이 된다.
마치, 그들이 그런 대우를 받는 게 응당하다는 듯이 말이다.
조금 다른 사람에게는 비난과 폭력이 마땅함을 가르치고, 학습하는 공간이 '학교'이다.
'학교'에서 자신을 인정받지 못하는 효신은 삶이 없다.
죽음이 택해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영화 안의 학교와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짜놓은 정상성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매몰차게 돌을 던지는 우리 사회.
이성애자, 남성, 비장애인, 중산층, 기혼, 대졸 등 사회의 정상성에 포섭되지 않는 사람들은 곳곳에서 눈물 흘린다.
영화의 마지막즈음, 효신과 신아가 아이들이 모두 모인 강당에서 축하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비록 상상의 장면이지만, 효신과 신아는 잠깐이나마 그들의 사랑을 인정받고 축하받았다.
상상씬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애초 만들어질 이유가 없었을 거다.
우리 사회도 약자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감정과 선택을 존중한다면, 수많은 비극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 모교>의 개봉을 맞이해, 그리고 2021 퀴어 퍼레이드 주간을 맞이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구글플레이에서 감상해보자.
저작권자 ⓒ OTT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ott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