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액트>의 포스터. 꼭 껴안은 모녀의 모습에서 어딘가 기괴함이 느껴진다. 사진 IMDB


[OTT뉴스=조수빈 OTT 평론가] 핑크빛 물감을 온통 뒤집어쓴 듯한 주택에 조금 특별한 두 모녀가 입주한다.

백혈병과 천식, 설탕 알레르기 등 많은 질환을 앓고 있는 집시(조이 킹 분)는 엄마 디디(패트리샤 아퀘트 분)의 보살핌 속에서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위 튜브로 음식을 섭취해왔다.

쉽지 않을 상황임에도 "집시의 엄마라서 행운이에요"라고 말하는 디디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연민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별다른 직업이 없는 모녀는 이렇게 모인 기부금으로 생활해왔으며, '사랑의 집짓기 봉사단'에게 선물 받은 동화같은 집 역시 그런 연민의 결과물이었다.

올해의 아동이 된 집시(조이 킹 분)와 엄마 디디(패트리샤 아퀘트 분)가 기부금을 전달 받고 있다. 사진 IMDB

보호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

모녀는 이사 기념 파티를 열어 이웃들을 초대했고, 집시는 파스텔 빛의 다디단 컵케익에 눈이 간다.

절대 먹어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충동을 이기지 못해 그만 크림을 입에 대고 만다.

놀란 표정의 이웃들을 뒤로한 채, 디디는 집시를 곧장 응급실로 데려간다.

그런데 집시는 병실에서 뜻밖의 말을 엿듣게 된다.

바로 자신에게 설탕 알레르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 사실은 여전히 비밀이다.

알레르기도 백혈병도 없으며, 두 발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사실도.

엄마이자 하나뿐인 절친 디디를 위해 거짓에 동조해왔지만, 지나친 구속은 나날이 집시의 숨통을 조여온다.

자유를 되찾고 싶은 집시는 마침내 자신을 구해줄 왕자님을 찾아 이렇게 부탁한다.

"날 위해서 우리 엄마를 죽여줄래?"

<디 액트>는 2015년 당시 미국을 충격에 몰아넣은 집시 로즈 블랜처드 살인사건을 드라마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아픈 사람을 극진히 간호하는 모습을 보여 타인의 관심을 얻으려는 정신질환)이라는 소재가 중심이 된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앞서 여러 작품에서 다뤄진 바 있어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임에도, 이 작품은 매화 오프닝에서 실화 기반 작품임을 상기시킴으로써 다른 층위의 흥미를 성공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위는 집시와 디디의 실제 인터뷰 장면, 아래는 <디 액트>의 한 장면이다. 사진 유튜브 캡처, IMDB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답게 고증에도 힘썼다.

초반의 인터뷰 장면은 의상과 헤어스타일까지 실제 인물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데, 배우 조이 킹은 집시 역할을 위해 실제로 삭발하였으며, 특유의 가늘고 높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인터뷰를 보며 여러 차례 연습했다고 한다.

이렇게 탄탄한 고증 위에 무서우리만큼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디디와 집시의 관계가 극한에 다다를수록 패트리샤 아퀘트와 조이 킹의 소름 돋는 연기 앙상블이 돋보이는데, 특히 마지막 화의 화장실 장면에서 조이 킹의 내면 연기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이다.

집시가 신데렐라 코스튬을 입고 행사장에 앉아 있다. 사진 IMDB


지금은 사라진 동화를 찾아서

'디 액트(The act)'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헌신적인 엄마와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로 보기 좋게 포장된 삶은 '연기'이며, 이는 자유를 향한 집시의 갈망을 만나 마침내 '행동'으로 변모한다.

한 겹 포장을 벗어던진 집시가 핑크빛 성을 빠져나왔을 때, 그녀가 마주한 세상은 더이상 원더랜드가 아니었다.

그녀가 꿈꿨던 세상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지금껏 응원하고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적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토록 동경하던 디즈니와는 다른 의미로 동화적인 삶을 살았던 집시는 자신만을 위한 동화를 쓰는 데에는 실패한다.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을 위해 엄마를 죽였다는 이질감, 그 씁쓸한 여운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훌루(Hulu)에서 방영한 <디 액트>는 왓챠에서 단독으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