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권세희 OTT 1기 리뷰어] 남녀 사이의 애정에 집착이 더해지는 순간, 그것은 사랑이라고 명명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연인의 탈을 쓴 폭력은 쉽게 묵인되기도 한다.
<로스쿨>에도 우리가 마주 하고 싶지 않은 문제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로스쿨생 전예슬(고윤정)과 그의 남자친구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
<로스쿨>은 제목 그대로 로스쿨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룬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서사를 전투적으로 풀어내기 때문.
우리 사회에 맞닿아있는 문제들을 다면적으로 변주하며 극을 그려낸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예슬의 이야기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에게서 이름 모를 여성들의 얼굴이 겹치기 때문일까.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로스쿨>은 대한민국의 가장 명문대인 한국대 로스쿨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교수 양종훈(김명민)과 학생들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얽히게 되면서 펼쳐지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로스쿨 생존기를 그려내 예비 법조인들이 법과 정의를 깨닫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다.
작품은 양종훈이 서병주(안내상)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양종훈은 로스쿨에서 형법을 가르치는 교수로, 악명높은 강의를 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법과 정의에 대한 기준만은 확고한 편이다.
실력 있는 교수가 살인사건에 연루되자 학생들은 모두 당황하지만, 작품이 전개될수록 양종훈의 재판 과정마저 로스쿨생들의 살아있는 강의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로스쿨>은 메인 플롯인 양종훈의 사건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엮어 보여주는데, 눈에 띄는 것은 전예슬의 이야기다.
전예슬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인 고영창(이휘종)의 데이트폭력을 겪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초반의 전예슬은 나름대로 쾌활하게 캠퍼스 생활을 하는 로스쿨생으로 등장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생기가 사라지고 강의 시간 중 선글라스를 쓰고 오는 빈도가 높아진다.
바로 고영창에게 정서적, 신체적 폭력을 당하기 때문이다.
고영창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전예슬에게 집착한다.
발을 밟으며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물론, 전예슬의 기숙사까지 마음대로 왕래한다.
도저히 침묵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전예슬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동기들에게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법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상황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모습은 다소 답답하게 비친다.
예슬의 속마음은 꽁꽁 싸인 채로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영창의 악행은 더욱 빠른 속도로 추가된다.
그는 전예슬에게 양종훈을 궁지에 모는 위증을 하라고 종용하는 것도 모자라, 몰카를 찍어 유포하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관계 동영상을 유포하려는 고영창을 말리다 전예슬은 그를 밀치게 된다.
이 사고로 고영창은 머리를 부딪쳐 크게 다치게 되고, 전예슬은 상해를 입힌 혐의(중상해)로 재판까지 가게 된다.
전예슬의 변호를 위해 양종훈이 특별 변호인으로 나섰고, 동기들 역시 그의 무죄를 주장하며 정당방위에 대한 자료들을 바쁘게 찾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도 예슬은 고영창에 대해 직접적인 분노를 드러내지 않고, 죄스러운 얼굴을 할 뿐이다.
또한 자신 때문에 병원에 누워있는 고영창을 찾아가 모욕을 당해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모든 문제는 고영창으로부터 촉발된 것이 명확한데도 스스로 자꾸만 죄인이 되는 그의 모습은 불편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전예슬의 모습은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데이트폭력을 겪는 여성들의 모습과 닮았다.
데이트 폭력은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시작되므로 예슬의 경우처럼 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어렵고 주변에 알리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신고 건을 살펴봤을 때도 연인 간의 폭력 신고 건수는 현저히 떨어진다.
전예슬이 불법 촬영으로 고통받는 모습 역시 우리 사회에서 불거졌던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
피해를 본 여성들은 느끼지 않아도 되는 죄책감에 휩싸여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런 전예슬에게 양종훈은 고영창의 폭력이 없었다면, 병원 신세를 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죄책감의 근원을 차단한다.
<로스쿨>은 죄책감의 단절에서 그치지 않는다.
양종훈은 재판을 진행하다 변호를 중단하고, 전예슬에게 '스스로를 변호하라'고 주문한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하던 전예슬은, 천천히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때부터 전예슬은 움츠러든 피해자가 아니라, 사건을 명확하고 직선적으로 보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총기가 눈에 다시 차오른다.
자신을 억압하던 폭력의 굴레와 원인을 인지한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고 남자친구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분노한다.
양종훈을 비롯한 재판에 참석한 이들은 전예슬의 모습에서 여러 가지를 느낀다. 양종훈은 그에게 본인이 판사라면 어떻게 판결할지 묻는다.
전예슬은 이제야 비로소 두 주먹에 힘을 싣고 이야기한다.
"전 모 양은 성관계 동영상이 만천하에 유포되는 끔찍한 상황에서부터 자신을 지키려다, 의도치 않게 고 모 군을 밀쳐 상해를 입힌 것으로 형법 제21조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써 정당방위를 인정할 것입니다."
전예슬의 발화는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인지일 뿐만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외침 같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의 폭력에 노출된 것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전예슬은 단순히 폭력에 숨죽이는 답답한 인물이 아니다. 그저 목소리 내기를 어려워했을 뿐.
그리고 이제 그는 더는 숨지 않고 상황을 직시한다.
그간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 장면은 그가 아픔을 겪고, 딛으며 법조인으로 한 발자국 걸어가는 순간이며, 또한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에게도 미약하지만 단단한 용기를 불어넣는 순간일 것이다.
이처럼 <로스쿨>은 개인을 통해 곪고 있는 사회의 문제를 드러낸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저작권자 ⓒ OTT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ott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