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케네디: 과카몰리 철학> 공식 포스터. 사진 다음 영화
[OTT뉴스=장혜연 OTT 1기 리뷰어] 뮤지컬 <시카고(Chicago)>의 주인공 록시의 남편 에이머스가 부르는 '미스터 셀로판(Mr. Cellophane)'이라는 노래가 있다.
모두 날 보지 못하고 없는 것처럼 나를 지나쳐버린다.
문득 지금 나는 열정도 의미도 없이 태어난 김에 대충 살아가는 무향무취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보이지 않는 셀로판지처럼 투명하고 흐물흐물해져 버려서 에너지를 새롭게 충전하기도 쉽지 않다.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하고 열정을 구할 사람 어디 없을까?
왓챠에서 배급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애나 케네디: 과카몰리 철학>은 베스트셀러 요리책 작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다이애나 케네디의 삶과 철학을 차근히 보여준다.
백인의 영국 여성이지만 어느 멕시코인들보다 멕시코 요리를 사랑하는 다이애나는 멕시코의 풍부한 음식 문화를 올바르게 전파하는 데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
95세 백발 할머니인 다이애나 케네디의 카리스마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의 모험심과 세상에 대한 열정을 조금이나마 닮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이애나는 멕시코 요리와 문화에 대해 8권의 책을 집필하고 <다이애나 케네디와 함께하는 멕시코 요리의 예술>이라는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작가이자 요리사, 연구자이다.
멕시코의 지역들을 돌아다니면서 레시피를 수집해 영어권 사람들 중에서 최초로 멕시코 요리의 풍부함을 밝혀 냈다.
시장을 레시피 연구에 중심에 두어, 멕시코의 가족들은 무엇을 먹고, 어떤 고추와 허브를 사용해서 요리하는지 집념을 가지고 연구했다.
'다이애나 식' 레시피로 바꾸기보다는 멕시코 전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현재까지도 노력하고 있다.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 다이애나. 사진 다음 영화 출처
삐삐 롱스타킹이 할머니가 되면 다이애나 케네디 같은 할머니가 될 것 같다.
줄무늬 양말을 신고 숲속 외딴집의 큰 침대에서 일어나, 집 주변을 빙글빙글 산책한다.
시끄러운 옆집 개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아무도 이래라저래라하지 못하는 도로에서 트럭을 타고 달리고, 보글보글 내 고집대로 요리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때때로 완벽하지 않은 고집쟁이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친다.
명확한 목적지를 가지고 달리면서 멈추지 않는다.
커피를 로스팅하고 있는 다이애나. 사진 유튜브 공식 트레일러 캡처
"무슨 요리를 하든 간에 아보카도를 갈지 마세요. 과카몰리는 덩어리가 씹혀야 제맛 이니까요. 묽고 부드럽고 줄줄 흐르는 소스가 되면 안 돼요"
과카몰리 레시피를 설명하는 이 말에서 다이애나를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라 가공되지 않아 '날 것 그대로'가 거칠게 살아 있는 소스지만, 그것이야 말로 '진짜' 소스다.
남들이 아무도 하지 않았던 걸 만들어냈다는 데에서 오는 자부심과 거침 없음, 고집이 느껴진다. 씹기는 쉽지만 향이 쌓이지 않아 매력 없는 사람은 아니었나 반성해본다.
평화로움 속에서도 강한 에너지를 얻고 싶은 당신에게 가장 먼저 추천한다.
마음으로 미래 세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신선한 고수가 들어간 타코를 한 입 가득 먹고 싶은 사람에게,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제로 웨이스트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살다보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들도 있답니다. 가끔은요. 요리할 때 듣는 노래를 틀고 즐겁게 요리하세요. 콩을 으깨면서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셔도 되고요"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리느라 뜸을 들여야만 만날 수 있는 풍미를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와닿는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즐거운 라디오를 틀고 다이애나와 함께 시간이 흘러가는 걸 느껴보자.
천천히 콩을 으깨다보면 풍미 가득한 나의 삶을 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