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김주영 OTT 1기 리뷰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사실상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확률은 산에서 호랑이를 마주칠 확률보다 낮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제대로 이름을 남기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가 반가운 이유다.
지난 3월 극장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용'이 아닌 정약용의 형 '정약전'의 이야기를 담는 것을 넘어, '창대'라는 이름의 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흑산도 토박이인 창대는 학문에 열의가 있으나, 출신과 가난한 환경 탓에 입신양명을 꿈꾸지 못한다.
낮에는 물고기를 잡고 밤이면 어렵게 구한 책을 읽지만, 체계 잡힌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신유박해로 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를 받아온다.
처음에는 창대를 '상놈의 자식'이라 부르던 약전은 점점 "창대야"라며 이름으로 그를 부르기 시작하고, 서학쟁이라며 약전을 배척하던 창대는 약전을 '스승님'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창대는 약전에게 해양생물에 대한 지식을, 약전은 창대에게 성리학을 가르치며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되기 시작한다.
<자산어보> 속엔 정약전과 창대의 계급을 뛰어넘는 우정, 정약전의 진보된 사상 등 많은 내용이 담겨있지만,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상처받는 창대의 모습이다.
창대는 흑산도라는 우물에 갇힌 개구리다.
제대로 성리학을 배운 적 없기에 성리학을 갈망하고, 뭍으로 나가본 적이 없기에 뭍을 갈망한다.
그가 본 책은 터무니없이 적고, 그가 본 현실은 딱 흑산도만큼이다. 창대의 앞엔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
뭍으로 나가 '목민심서'로 대변되는 정약용의 사상을 따르는 것과 흑산도에 남아 '자산어보'로 대변되는 정약전의 사상을 따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기존의 체제인 성리학을, 후자는 기존의 체제에 반하는 실학을 뜻한다.
우물 안 개구리인 창대에게 이미 우물 밖을 무섭도록 경험하고 온 약전의 조언이 쉽게 와 닿을 리가 없다. 또, 애써 약전을 따라 험한 길을 걷고 싶지 않기도 하다.
결국 출세에 대한 열망과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대의명분이 혼재된 채로 창대는 약전을 떠나 뭍으로 향한다.
흑산도에서 창대는 멍게 속에서 파랑새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흑산도에서 창대는 섬사람들에게 일이 생길 때마다 고둥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뭍에서 창대가 보고 듣는 건, 백성에게 제공할 쌀에 모래를 섞는 아전들과 이를 모른 척하는 목민관, 그리고 세금 낼 돈이 없어 스스로 성기를 잘라낸 백성의 울음소리다.
결국 창대는 다시 흑산도로 돌아온다.
흑백으로 표현된 영화 속, 유일하게 선명한 색은 '푸른색' 뿐이다.
밤하늘, 날아오르던 파랑새, 그리로 마지막 순간 창대가 바라보는 흑산도와 바다는 모두 푸른 빛을 띤다.
푸른색은 희망과 동시에 우울을 상징하는 이중적인 색이다.
파랑새는 희망을 상징하지만, 파랑새 증후군은 헛된 희망에 사로잡힌 증세를 뜻한다.
가혹한 성장을 경험한 창대의 파랑새는 뭍에 닿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넓은 바다를 헤매다 지쳐 바닷속 깊은 곳으로 떨어졌을까.
짙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 <자산어보>는 티빙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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