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권세희 OTT 1기 리뷰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를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작고 유약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드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아이보다 어른이야말로 도움이 더욱 절실할지도 모른다.
이미 자라버린 이들에게는 어떤 조건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영화 <아이>는 바로 이 지점을 느릿하게 파고든다.
보육원 출신의 아영(김향기)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생활하고 있다.
국가로부터 지급되는 돈을 받으며 팍팍한 대학 생활을 영위하는 그는 다소 염세적이다.
가족이 없는 친구들은 틈만 나면 아영의 집으로 몰려들고, 자신의 집임에도 독립성은 현저히 떨어지는 공간에서 기거한다.
안팎으로 쪼들리는 아영은 아동학과 전공을 하는 학생으로 아이들을 볼 때만은 행복해한다.
그러던 중 수급받는 생활비에 문제가 생긴 아영은 영채(류현경)의 아이인 혁(탁지온)을 돌보는 베이비시터가 되기로 결심한다.
<아이>라는 제목처럼 생후 6개월 된 아이인 혁을 통해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시작된다.
그러나 영화는 쓰고 단 인생의 변주를 번갈아 보여주기보다 마냥 쓴 인생의 모습을 포착한다.
마치 세상은 단면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듯, 다소 불편할 정도로 음울한 장면들을 가감 없이 선보이기 때문.
극 중 영채가 일하는 술집의 사장인 미자(염혜란)의 대사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생활과 육아의 벼랑으로 몰린 영채에게 "인생 원래 고다. 렛츠 고할 때 고 아니고, 쓸 고. 못 먹어도 고할 때 고 아니고 빌어먹을 고"라는 말처럼 흘러가기 때문이다.
혁이를 맡게 된 아영에게 영채는 시종일관 불친절한 행동을 보인다.
부끄러움도 없고, 도덕적 판단의 기준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채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진다.
영채가 발 딛고 있는 삶의 무게와 아영의 삶은 마치 균등한 것처럼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해가는 젊음에 가까스로 기대며 살아가는 영채와 아무런 희망없이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아영은 마치 동일한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부유하는 이들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러나 비슷하다고 해서 평화로운 생활을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이>는 삶이란 비통함 속에서도 또 다른 비통함을 겪는다는 것을 인지시킨다.
영채의 실수로 침대에서 떨어진 혁이 다치는 사건을 영채 스스로 아영에게 뒤집어씌우기 때문이다.
영채에게는 유난히 마음을 쓰는 미자 역시 아영을 고소하라며 씁씁한 양면성을 보여준다.
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더욱 거칠하게 세공한다.
혁을 정상적으로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한 영채가 불법으로 아이를 사고파는 현숙(박옥출)에게 혁을 맡기기 때문.
술집에서 돈을 벌며 혁을 키우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고, 자신과 함께 사는 것보단 부잣집에서 살아가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채의 판단으로 혁이 불법적인 입양아가 되어있는 동안 아영은 보육원에서부터 함께 자란 친구의 죽음을 목도한다.
그러나 그는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로 장례 한번 치르지 못한다.
아영과 친구들은 '우리가 가족'이라고 설명하지만, 법은 그들을 가족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버림 받은 그때처럼 여전히 세상에 버림받고 있었다. 살을 부대끼며 함께 살아온 이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영은 자신처럼 버림받을 지도 모르는 혁을 구하기 위해 현숙을 찾아간다.
고군분투 끝에 아이를 되찾아 영채에게 안겨준다.
영채는 왜 데려왔냐며 화를 내다가 결국 오열한다.
아영은 천천히 영채에게 다가간다. 차갑고 단단한 세상 속에서 마치 두 사람만이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영채보다 어린 아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도와줄게요. 진짜 도와줄게요. 혁이 버리지 마요"라고 말한다.
그 말은 마치 아영 자신에게, 혹은 영채에게, 그리고 혁이에게,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이들에게 호소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이>가 시사하는 바가 몸집을 불리는 순간이다.
작품은 불친절하고 까칠한 세상을 직관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작은 희망을 심어주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절망과 괴로움에 힘겨울 때도 '도와주겠다'라는 말이 가지는 힘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이미 셀 수 없이 상처받았음에도 다시 손을 내미는 순간 진한 감동이 와닿는다.
미약하고 희미하지만 울림은 작지 않다.
영화는 혁과 영채, 아영, 그리고 미자까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마치 한 사람의 일대기처럼 보인다.
혁이 자라 같은 모습이 되더라도 '이렇게 사는 게 뭐 어때서'라는 묵직한 메시지도 던진다.
힘겨움 속에서 견디고 살아가는 것, 내 몫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아이>는 이 영화의 매개임과 동시에 우리는 모두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음을, 그리고 여전히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관통한다.
<아이>는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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