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라는 공포물이 싫다면, 조용히 무서운 오컬트 호러 영화 3선

<더 위치>는 넷플릭스, <제인 도>는 왓챠와 넷플릭스, <바바둑>은 왓챠에서 시청 가능

조수빈 승인 2021.05.27 10:58 의견 0
위부터 <더 위치>, <제인 도>, <바바둑>의 한 장면. 사진 다음 영화


[OTT뉴스=조수빈 OTT 1기 리뷰어] 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부지런한 더위가 벌써 찾아왔다.

벌써부터 에어컨을 켜가며 더위에 굴복하고 싶진 않다면, 때 이른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줄 공포 영화 한 편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무서운 영화를 보고는 싶지만, 깜짝 놀라는 건 질색인 당신을 위해 점프스케어(Jump Scare) 없는 오컬트 영화 3편을 준비했다.

오컬트라는 장르가 생소하다면, 몇 년 전 흥행작 <곡성>을 떠올려 보자.

<더 위치> : <유전>의 17세기 버전이랄까

오컬트는 미지의 세계나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공포를 다룬 장르다.

공포 영화 마니아라면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유전> 혹은 <미드소마>를 한 번쯤은 들어 보거나 봤을 것이다.

아리 에스터 식의 오컬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영화 <더 위치>는 꽤 만족스러울 작품이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장면의 고요함에서 풍기는 매혹적인 공포가 <유전>과 특히 닮아 있다.

영화 <더 위치> 포스터. 사진 다음 영화


뉴잉글랜드로 이사한 청교도 가족, 아무도 살지 않는 척박한 땅에 새로이 살림을 일구려하나 절대 쉽지 않다.

가족의 장녀 토마신(안야 테일러 조이 분)은 말 안 듣는 쌍둥이 동생을 타이르고 갓난아이까지 돌보느라 연일 분주하다.

어느 날, 토마신이 돌보던 막냇동생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이후 가난하지만 평화롭던 이 가족에게 어둠이 찾아든다.

'악마와 계약을 했다'며 동생들을 겁주려 한 거짓말은 신앙 깊은 가족들의 의심으로 어느새 그녀의 진실이 되어간다.

영화는 1692년에 일어난 세일럼 마녀재판을 모티프로 하여, 당시의 마녀사냥을 한 가족의 이야기로 축소하여 그려낸다.

실제 사건을 다룬 만큼 고증에 상당히 신경 썼는데, 의복뿐만 아니라 세일럼 마녀재판에서 실제로 쓰였던 말들과 17세기 근대 영어의 특징까지 대사에 녹여냈을 정도이다.

작품의 배경인 숲속 외딴집은 그 어둑한 풍경만으로도 공포를 자아낸다.

이는 자연광을 이용한 촬영 방식에서 얻어낸 결과로, 극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조성한다.

더불어 절제된 음향 효과와 와이드 숏으로 완성한 정적인 연출은 숲의 고요함을 미지에 대한 근원적 공포로 승화한다.

주연 배우인 안야 테일러 조이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제인 도> : <더 위치>의 마녀가 21세기에 발견된다면

한 주택에서 일가족이 몰살당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없었으며, 처참히 훼손된 3구의 시신은 이 집을 탈출하려 한 듯 보인다.

그런데 주택의 지하에서 이름 모를 여성의 나체 시신이 발견된다.

죽었다기엔 아무런 외상도 없이 정돈된 모습인 그녀(올웬 캐서린 켈리 분).

늦은 밤, 지하의 낡은 부검소에서 그녀의 사인을 찾기 시작한다.

부검하면 할수록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아무래도 부검소를 탈출해야 할 것 같다.

부검소에서 제인 도의 부검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다음 영화


영화 <제인 도>의 원제 'The Autopsy of Jane Doe'는 '제인 도의 부검'이라는 의미로, 여기서 '제인 도'는 신원미상의 여성을 지칭하는 가상의 이름이다.

영화는 세일럼 마녀 재판의 피해자가 21세기에 살아있는 시체로 발견됐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부검소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제인 도의 시신을 하나씩 뜯어보며 발견하는 단서가 영화의 흐름을 주도한다.

이러한 공간 설정을 통해 영화 <컨저링>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밀실 호러 장르의 매력을 드러낸다.

<컨저링>이 집이라는 공간의 공포를 극대화했다면, <제인 도>는 그 공포를 시체 한 구에 집약 시켜 놓은 듯하다.

더불어 현대 과학의 결실인 법의학과, 과학으로 설명 불가능한 오컬트의 만남은 뻔한 공포 장르에 새로움을 더하기에 충분하다.

신선한 소재와 세련된 연출에 비해 다소 생뚱맞은 인과응보로 귀결되는 점은 아쉽지만, 으레 공포 영화에서 기대하는 재미는 확실하게 보장한다.

부검이라는 소재 특성상 나체가 적나라하게 등장하고, 약간의 대비할 시간을 주는 점프스케어가 몇 장면 있다는 점을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바바둑> : 내면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

아멜리아(에시 데이비스 분)는 출산을 앞두고 병원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홀로 아들까지 돌보는 그녀는 한때 잘나가는 기자였다.

심한 행동 장애로 퇴학당한 아들과 생활하느라 '나'로서의 삶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녀는 아들이 남편 유품에 손대는 것도 싫고, 남편의 기일과 같은 아들의 생일은 단 한 번도 챙겨준 적이 없다.

때 쓰는 아이를 달래려 '바바둑'이라는 동화책을 읽어 주는 그녀.

그런데 동화 같지 않은 괴기스러운 내용에 놀라 책을 숨겨버린다.

그날부터 아들은 바바둑이라는 괴물이 집에 살고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영화 <바바둑> 포스터. 사진 다음 영화


이 영화는 오컬트 장르의 형식을 빌려 가족의 죽음에서 비롯한 우울의 극복을 그린다.

아빠 잡아먹은 아들이라는 근원적인 우울을 안고 태어난 아들의 문제는 과잉 행동으로 나타난다.

아들을 보면 필연적으로 죽은 남편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엄마는 아들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남편에 대한 언급을 필사적으로 꺼린다.

회피를 해결로 인식하여 우울을 감추고 숨기려 할수록 이들의 고통은 잔인한 괴물이 되어 돌아온다.

엄마라는 이유로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 아들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바둑이라는 미지의 존재는 아멜리아가 모성이라는 허울을 버리고 그동안 부정했던 욕구와 욕망을 드러내는 매개체로 자리한다.

그녀가 엄마가 아닌 '나'로서 살고 싶은 욕구를 받아들였을 때의 끔찍한 죄책감이자, 자식을 조건 없이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아주 오래된, 현실적인 공포를 상징하는 것이다.

나쁜 기억과 우울,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영화 <바바둑>은 그런 무시무시한 내면의 존재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공포를 영화적 상황에 빗댐으로써 작품은 가족의 사랑을 그린 한 편의 시로 완성된다.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 영화 <더 위치>는 넷플릭스에서, <제인 도>는 왓챠와 넷플릭스, <바바둑>은 왓챠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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