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일 특집] 잘 알려지지 않은 5ㆍ18 영화, <스카우트>

임창정 주연의 <스카우트>
5ㆍ18 광주 이야기를 색다른 시각으로 다뤄

김주영 승인 2021.05.18 09:19 의견 0
영화 <스카우트> 포스터. 코믹한 분위기 탓에 5ㆍ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사진 다음 영화


[OTT뉴스=김주영 OTT 1기 리뷰어]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유명한 영화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5.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화려한 휴가>다.

어릴 적 부모님이 둘이서만 영화관 데이트를 하고 오신 적이 있는데, 그때 두 분이 보신 영화가 바로 <화려한 휴가>였다.

영화 어땠냐는 질문에 부모님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시던 게 기억난다.

"그땐 그렇게 인도가 멀쩡하지 않았는데. 던질 게 없어서 보도블록이라도 떼어서 던지느라…."

영화 속에서 시민들이 총에 맞고 그걸 지켜보는 이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는데도, 직접 그 시절 광주를 경험한 부모님께는 실제보다 '약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화려한 휴가>에 비해 흥행하지 못했지만, 같은 해에 나온 또 다른 5.18 민주화운동 관련 영화가 있다.

바로 영화 <스카우트>다. 두 영화는 같은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다루지만 전개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화려한 휴가>가 참상 한가운데에서 광주 시민들이 군부의 폭력에 짓밟히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면, <스카우트>는 조금 먼발치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바라본다.

<스카우트>는 엄숙한 분위기의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벽 한가운데 태극기가 걸린 차가운 분위기의 회의실에서 중년 남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군 간부들이 모여 작전이라도 준비하는 듯한 분위기지만 나누는 대화가 영 이상하다.

올해도 안암동에 졌다느니, 광주에 있는 선동열이가 괜찮다느니…. 그렇다. 이들은 대학 야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스카우트>는 신촌의 Y 대학과 안암의 K 대학의 오랜 경쟁 관계에서 시작한다.

K 대학과의 경기에서 계속된 패배를 경험한 Y 대학의 간부진은, 어떻게 해서든 광주일고의 '선동열'을 Y 대학으로 스카우트 해오길 원한다.

문제는 선동열이 이미 K 대학과 계약을 하기로 암암리에 얘기가 되어있단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말단 직원은 하라면 해야 했다.

그렇게 Y 대학 야구부 스카우트 '호창(임창정 역)'은 선동열을 설득하기 위해 전라도 광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학 시절 사귀다 일방적으로 호창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전 여자친구 '세영(엄지원 역)'과 재회한다.

선동열 父(백일섭 역)에게 "아들을 제게 주십시오"라며 무릎을 꿇은 호창의 모습. 사진 다음영화

이후 호창의 고군분투기가 이어진다.

K 대학 측에서 꽁꽁 감춰둔 선동열을 만나기 위해 병원 납치극을 감행하고, 선동열 부모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목욕탕까지 따라가 선동열 아버지의 등을 민다.

과장되게 코믹한 상황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틈틈이 자막으로 5월 18일까지 디데이를 세긴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스치듯 흘러가는 뉴스 소리, 시민들이 만들고 있는 플래카드 문구가 아니었다면 5.18 민주화 운동 직전의 광주라는 걸 짐작조차 할 수 없을만큼 호창의 세계는 평화롭다.

그러나 엔딩을 30분 남긴 시점, 세영이 남긴 의미심장한 말부터 영화는 급격하게 결을 달리한다. 서울로 돌아가면 다시 야구를 시작해볼까 한다는 호창에게 세영이 말한다.

"형은 야구복이 제일 잘 어울려. 줄무늬만 아니면요"

대학 시절 호창의 야구복은 민무늬였기에 호창은 세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후에 선동열이 입은 줄무늬 야구복을 보고 나서야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바로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을 학교 측의 명령을 받은 야구부가 폭력적으로 진압했던 기억이다.

그때 호창은 줄무늬 야구복을 입은 채 무자비하게 야구 배트를 휘둘렀었다.

호창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어린아이들과 어울려 운동하는 걸 즐기고, 엄마에게 줄 어버이날 선물을 여직원의 조언까지 받아 준비한다.

전두환을 보고 농담처럼 ‘남자답다’라고 말하는 무지함이 있지만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하지는 않는, 말 그대로 '소시민'이다.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 탓에 원치않게 시위대 진압에 투입되었으며, 시위대에게 야구 배트를 휘두른 이유도 다친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모든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무장 상태의 학생들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애써 그 기억을 잊은 채 평범하게 살아오던 그는, 광주에 폭력적인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고 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그토록 원하던 선동열과의 계약을 논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경찰서를 습격해 붙잡힌 세영과 시민들을 구해내고는 홀로 경찰에게 붙잡힌다.

이후 호창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가 다시는 세영과 만나지 못했고, 선동열을 K 대학에 빼앗겼다는 사실만 전해진다.

호창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속죄를 한다.

경찰서에서 세영을 구출해낸 뒤, 서로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세영과 호창. 사진 다음 영화


매년 5월 18일, 광주의 선생님들께선 교과서를 펴는 대신 자신이 경험한 5ㆍ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누군가는 도청 앞에서 시위하다가 바로 옆에서 시민이 총에 맞는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고, 누군가는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린 부모님 탓에 시위에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한 분은 당시 어린아이였는데, 군인이 자신을 발견하고 저격 자세를 취하다가 총을 내리던 짧은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가 비극의 한가운데 있지는 않았지만 모두의 기억 속에 그날의 비극이 있었다.

<화려한 휴가>가 부모님께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던 이유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의 한계에 있다.

아무리 그 시절을 상상하고 비극적으로 구성해봐도 당사자들의 기억보다 비극적이지 못한 것이다.

<스카우트>는 비극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며 이 한계를 넘으려 노력한다.

아마도 시청자의 대다수일 '외부인'의 시선에서 극을 전개하며 광주의 비극을 전시하지 않은 채 그 시절의 아픔을 에둘러 전달한다.

더 나아가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죄를 저지른 이들, 그리고 이를 잊고 살던 이들에게 속죄할 것을 말한다.

또다시 5월 18일이 다가온다. 아직도 속죄하지 못한 이들 탓에 그날의 비극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남았다.

더 많은 이들이 80년 광주의 봄을 기억하길 바라며, 영화 <스카우트>를 추천한다.

<스카우트>는 넷플릭스와 왓챠, 티빙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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