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순서대로 <디태치먼트>, <위플래쉬>, <지랄발광 17세>의 스틸 컷. 사진 네이버 영화
[OTT뉴스=조수빈 OTT 1기 리뷰어]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철없는 친구들만큼이나 독특한 별명을 가진 선생님들이 떠오른다.
말버릇이 독특하다거나 특정 동물을 닮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붙여진 그 별명들은 아직도 기억 속에 본명 대신 자리하고 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영화 속에서 확고한 캐릭터를 드러내는 세 분의 선생님을 만나보자.
좋은 쌤 : <디태치먼트>의 헨리 바스
헨리 바스(애드리언 브로디 분)는 기간제 교사이다.
다른 선생님의 부재를 채우려 임시로 배정됐지만, 아이들을 정도로 이끌겠다는 의지만큼은 누구 못지않다.
하필이면 문제아 집합소로 유명한 학교에 발령이 난 헨리.
아이들은 새로 오신 선생님께 딴죽걸기 바쁘고, 학부모들은 자녀에게서 관심이 떠난 지 오래다.
헨리 바스가 폐허가 된 교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 사진 네이버 영화
아이들의 방황하는 삶은 교실 밖까지 이어진다.
헨리는 짧은 치마에 망사 스타킹을 신은 소녀를 우연히 마주친다.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에 성매매로 길거리를 전전하는 에리카(사미 게일 분)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다친 곳을 치료해주고 에이즈 검사까지 시켜주는 아량을 베푼다.
에리카는 당분간 헨리와 함께 살기로 한다.
여느 영화처럼 구제 불능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헨리는 분명 좋은 선생님이지만, <디태치먼트>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부모의 무관심과 폭력 속 기댈 곳 없는 아이들의 상처는 치유되기엔 너무 깊고 짙었기에, 끝내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남는다.
인터뷰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큼은 하기 싫었다는 교사들과 그럼에도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헨리 바스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담는다.
극적인 설정 없이 현실 그대로를 비추며 오늘날의 공교육과 청소년 문제를 다루고 문제적 어른과 아이의 속사정,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응시한다.
그저 조금 더 현실적인 영화일 뿐인데 이토록 우울할 수 있을까.
해피도, 새드도 아닌 엔딩에 이르면 조용한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다.
무서운 쌤 : <위플래쉬>의 플레처
음악학교 선생님인 플레처(J.K. 시몬스 분)는 그야말로 폭군이다.
교내 밴드를 지휘하는 그는 학생 내면의 광기를 끌어내 더 나은 성취로 이끄는 독특한 교육방식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 방법이 조금 살벌하다.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막말과 폭력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다.
앤드류가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고도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 영화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진 신입생 앤드류(마일즈 텔러 분).
앞으로 닥칠 시련을 미처 알지 못한 채 플레처의 밴드에 입성한다.
나름 메인 드러머인데, 플레처가 그에게 의자까지 집어 던지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앤드류는 드럼에 대한 집념으로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스틱이 피범벅이 되도록 연습에 매진한다.
그의 피튀기는 열정은 8톤 트럭이 와도 막을 수가 없다.
영화는 단순한 사제관계를 넘어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을 다룬다.
위플래쉬(Whiplash)는 채찍질이라는 의미로, 스크린 너머 관객까지도 지치게 만드는 플레처의 교육방식과 맥을 같이하는 제목이다.
목표를 향한 채찍질이 과했던 탓일까. 두 사람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점차 목표를 벗어나게 된다.
플레처는 자신의 과오에 발목을 잡히고, 무섭게 타올랐던 앤드류의 열정은 금세 연료가 바닥나고 만다.
망쳐버린 서로를 향한 복수로 마무리되는 <위플래쉬>는 능력주의 사회와 목표지향적인 교육의 맹점을 고발한다.
이상한 쌤 : <지랄발광 17세>의 브루너
브루너(우디 해럴슨 분) 선생님은 발광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지지 않는 찐광기를 보여준다.
말 안 듣는 사춘기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에 도가 터버린 걸까.
어느 날, 짝사랑 상대에게 문자를 잘못 보내 자살하고 싶다는 학생 네이딘(헤일리 스테인펠드 분)이 상담을 요청한다.
다소 심각한 문제일 수 있음에도, 브루너는 '나도 지금 내 유서를 쓰고 있는 중'이라며 무심하게 답변한다.
잘못 보냈다는 문자 내용을 하나하나 읽으며 잔인하게 확인사살을 하고 '아무도 널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구나'라며 돌직구를 툭툭 던진다.
이런 반응에 네이딘은 그의 적은 연봉을 비웃고, 대머리라 욕하며 폭주하기 시작한다.
점점 협박에 가까워지는 발언에도 브루너는 아무렇지도 않다.
네이딘은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드는 이 상담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브루너가 네이딘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 영화
역효과만 나는 듯 보였던 상담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위기 상황에 처한 네이딘은 또 브루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특별한 조언이나 비판 없이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시급하다.
누구나 학창 시절의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수치스러운 경험으로 시작된 마의 17세를 겨우 넘긴 네이딘처럼, 우리의 문제적 시간들도 어찌어찌 지나갔다.
뛰어난 해결사가 나타나지 않은 덕분에 겪었던 일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흑역사라고 덮어버리기엔 조금 아깝다. 아무튼 흑역사도 내 역사니까.
이상하리만치 무심한 브루너의 태도는 직접 부딪쳐봐야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기인한 노하우가 아니었을까.
영화 <디태치먼트>와 <위플래쉬>는 왓챠에서, <지랄발광 17세>는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