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엔딩스 비기닝스>의 포스터, CJ ENM이 제작에 참여했다. 사진 네이버 영화


[OTT뉴스=조수빈 OTT 1기 리뷰어] 다프네(쉐일린 우들리 분)는 돌연 직장도 오랜 연인도 훌훌 버리고 언니 집에 얹혀살기로 한다.

그리고 금주와 금욕 생활을 굳게 다짐한다. 절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되뇌면서.

새 출발을 꿈꾸는 그녀 앞에 과거의 기억들이 정돈되지 못한 잔상으로 스친다.

전 남자친구와의 편안하지만 지루했던 관계, 직장 상사의 성폭행...

금욕과는 어울리지 않는 파티장, 다프네는 금욕 생활 중 스스로 유일하게 허용한 흡연을 즐기느라 바깥을 맴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명의 남자가 다프네에게 접근해 온다.

파티에서 만난 잭과 다프네. 사진 네이버 영화


편안함과 열정이라는 서로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잭(제이미 도넌 분)과 프랭크(세바스찬 스탠 분).

다프네는 그들에게 자신의 고통 구역(Suffer Zone)을 조심스레 내어 준다.

그녀의 결심은 이대로 실패하게 될까.

감각적 연출의 대가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이 일렁이는 다프네의 내면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엿본다.

찾아 듣고 싶은 몽환적인 플레이리스트는 덤이다.

미성숙한 감정의 결과물 : 자기 파괴적 관계 맺기

다프네는 얼떨결에 두 남자와 번갈아 데이트하게 된다.

그런데 그 둘이 친구 사이라니.

저울질하는 것처럼 보이긴 싫지만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게 쉽지가 않다.

덕분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도 두 배로 힘들어졌다.

잭과의 데이트는 담배 연기 속 열띤 대화로 마무리됐지만, 프랭크 앞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결국, 야심 찬 다짐은 작심삼일로 끝나버린다.

다프네를 찾아온 프랭크. 사진 네이버 영화


다프네는 잭 몰래 프랭크를 만나며 자신을 과거의 고통 속으로 끌어당긴다.

두 남자 사이를 오갈수록 떨쳐내고 싶은 그 날의 기억들이 그녀를 더욱 조여온다.

정서적 결핍을 남자로 채우려는 행동이 잘못된 해결책이라는 걸 다프네는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가 없다.

자신에 대한 얕디 얕은 기대까지도 저버린 까닭에 다프네의 자존감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 다프네의 삶이 정상 궤도로 올라설 수 있을까.

파괴는 창조적 행동의 전제다

영화는 제발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탄식을 자아내는 결말로 귀결된다.

현실 로맨스를 표방하던 영화는 어느새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로맨스가 되어버린다.

다프네는 자기 파괴적 행동의 절정에서 임신이라는 뜻밖의 사건을 맞이한다.

두 남자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을 타던 그녀는 결국 잭도 프랭크도 아닌 아이를 선택한다.

정말 끔찍한 엄마가 될 것 같지만, 이제는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자꾸만 그림자를 드리웠던 과거의 아픔에 정면으로 부딪치고 서툴렀던 감정들에 끝맺음을 고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랑할 새로운 사람을 찾는다.

수많은 비기닝은 엔딩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지만 이 사랑은 끝이 없을 것이라 믿는다.

이번 사랑은 나를 향한 것이니까.

과거를 정리하려 전 남자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다프네. 사진 네이버 영화


누구나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때로는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 선택에 중력처럼 이끌리기도 한다.

영화는 뻔한 스토리에 뻔한 설정으로 내 속을 비추는 거울을 만들어낸다.

뿌옇게 흐린 장면들이 포착하는 그 서투른 감정이 전부 나라서, 뻔해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엔딩스 비기닝스>의 뻔함은 보편적인 경험들로 치환된다.

다만, '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조금 아쉬움이 느껴진다.

임신으로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기 때문이다.

임신 말고 다프네가 자아를 찾는 좀 더 나은 방법은 없었을까.

이 영화에서 자신을 발견한 모든 이들의 엔딩이 아름답기를 바라본다.

현실 로맨스를 표방하는 영화 <엔딩스 비기닝스>는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