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이헴>의 포스터. 사진 다음 영화
[OTT뉴스=조수빈 OTT 1기 리뷰어]
상사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해고당한 당신,
만약 8시간의 면죄부를 준다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얄밉게 구는 직장 상사에게 복수하는 상상은 누구나 한 번쯤 아니 수도 없이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 실행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누군가 당신을 위해 멍석을 깔아준다면 어떨까.
영화 <메이헴>은 B급 슬래셔 스타일로 당신의 이런 일탈적인 상상을 구현한다.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개인적 삶을 잃어버린 악덕 기업 변호사 데릭(스티븐 연 분).
데릭은 카라(캐롤라인 치케지 분)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는 바람에 갑작스레 직장에서 잘리게 된다.
한편, 멜라니(사마라 위빙 분)는 이 회사가 연루된 대출 사기를 해결하러 데릭을 찾아온다.
데릭이 화를 삭이며 짐을 챙겨 나가려는 찰나,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 회사 건물이 통째로 격리되고 사내는 주체할 수 없는 폭력과 성욕으로 전쟁터가 된다.
짐을 챙겨 회사를 나서려는 데릭(스티븐 연 분). 사진 다음 영화
이런 아수라장의 원인은 ID-7이라는 바이러스.
이 바이러스는 8시간 동안 극도의 스트레스를 분비해 자제력을 잃게 만든다.
감염자는 즉시 격리 조치가 취해지며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심신 미약으로 추정, 사면을 받는다.
회사를 향한 복수심으로 뭉친 데릭과 멜라니는 이런 상황을 이용하고자 한다.
각각 네일건과 가위를 손에 쥐고 건물을 한층 한층 올라가며 도장 깨기식 복수를 시작하는 이들.
유혈이 낭자한 난장판 속에서 이들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내 건 내 거고 당신 건 당신 거죠"
복수의 층계를 올라가는 데릭의 화를 돋우는 건 망쳐버린 커리어보다도, 그의 머그잔을 멋대로 사용하고 있는 상사다.
여동생이 선물해 준 그 머그잔은 워커홀릭인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가족과 맞닿아 있는 물건이다.
깨끗하다는 이유로 데릭의 컵을 가져간 카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더러움을 데릭에게 전가해 그를 궁지로 내몬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 컵을 깨뜨림으로써 데릭의 분노에 불을 붙인다.
직장의 최종 보스인 대표이사 존 타워스(스티븐 브랜드 분)와 9인회. 사진 다음 영화
데릭과 멜라니는 본래 자신의 것이었던 직장과 집을 되찾기 위해 새빨간 혈투를 벌인다.
억눌러왔던 분노의 폭발 앞에 바이러스는 그저 거들 뿐.
무기가 아닌 사무용품을 이용한 적나라한 액션은 <킹스맨>의 교회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새하얗던 셔츠가 빨갛게 물들기까지.
최종 보스를 향한 배틀로얄식 사투 끝에 달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공포 영화에서 일찍 죽기로 유명한(?) 동양인과 금발 미녀의 조합.
영화는 이들에게 복수의 기쁨을 안기는 동시에 이 대표적인 클리셰를 보기 좋게 비틀어 버린다.
통쾌한 복수, 그 뒤에 남는 것
자제력만 없어졌을 뿐인데 순식간에 폭력이 난무하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된 <메이헴>.
그런데 슬프게도 이해가 된다.
직장에선 사소한 것에도 짜증을 주체할 수가 없으니까.
커피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자제하라는 권고에도 연신 커피를 외쳐대는 모습에서 아메리카노 수혈 없이는 살 수 없는 현대인들의 웃픈 현실이 느껴진다.
ID-7, 이름만 안 붙였을 뿐이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을 바이러스다.
그렇기에 <메이헴>은 매일같이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억누르고 사는 우리에게 묘한 희열과 통쾌함을 불러일으킨다.
'일이 날 지배'하는 삶을 살던 데릭은 8시간이 지난 뒤, 우리 모두를 대신해 큰 결심을 한다.
'일이든, 사랑이든, 인생이든 성공으로 가는 길은 직접 그리기'로.
일의 노예가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기로 말이다.
결말까지 속 시원한 영화 <메이헴>은 왓챠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