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권세희 OTT 1기 리뷰어] 인도의 사업가는 도덕적이면서도 비윤리적이어야 한다.
<화이트 타이거>는 서론을 이렇게 시작한다.
이 작품은 인도의 계급제도와 빈부격차에 대한 내용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적나라해서 거북하게까지 느껴지는 <화이트 타이거>를 보면 언뜻 한국 영화 <기생충>이 떠오른다.
자본에 의해 구분 지어지는 상하 관계 개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카스트 제도를 존속하고 있는 국가의 내면을 통렬하게 파고들면서 몰입감을 선사한다.
주인공의 일대기를 따라가다보면 감출 수 없는 찝찝함과 불쾌함, 그리고 극에서 말하는 '닭장'은 무엇인지 고찰하게 된다.
특별한 하인으로 산다는 것
주인공 발람 할와이(아르다시 구라브)은 인도의 하층민이다.
온 가족이 함께 가업에 매달리고 조모의 의견에 따라 미래가 정해지는 삶을 영위한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많은 환경에서 발람은 유난히 영특함을 드러낸다.
발람의 명민함을 알아챈 이는 발람에게 '화이트 타이거'라는 단어에 관해 이야기한다.
'화이트 타이거'는 매우 드물게 탄생하는 영물과 같은 존재를 뜻한다.
신비로운 단어를 상기하면서 발람은 스스로 화이트 타이거 될 수 있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한번 발이 묶인 정체성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법.
그의 의지와는 달리 가족의 반대로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발람의 삶도 극적인 변화를 겪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발람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 지주의 아들 아쇽(라지쿠마르 야다브)의 운전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
이를 위해 발람은 가까스로 얻은 돈으로 운전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도 신분에 대한 멸시는 발람의 주변에 산재하지만 고군분투 끝에 대저택의 운전수로 취직하게 된다.
발람은 드디어 지긋지긋한 닭장 속에서 벗어난 것일까? 그러나 해방은 결코 단순하게 도래하지 않는다고 영화는 지적한다.
표면적으로는 발람 개인이 지긋지긋한 고향에서 벗어났다는 성취는 있지만, 자아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민도 없기 때문이다.
하인으로 사는 삶이 최대 가치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는 거리가 있다.
각성 전의 발람을 보면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가 떠오른다. 철저히 계급으로 나뉜 사회는 각 계층 간에 어떠한 불만도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인간성이 거세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발람에게 아쇽의 부인 핑키(프리앙카 초프라)는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내 부모님이 미국에서 뭐하는 지 아세요? 잭슨하이츠의 낡아빠진 잡화점에서 맥주, 빤, 포르노를 팔아요 난 지하에서 숙제를 했고요"라며 "난 거기서 탈출했어요. 발람이 하고 싶은 건 뭐예요?"라고 묻는다.
처음으로 하인이 아닌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질문을 받은 것이다.
발람은 그때부터 세계의 뒤틀림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충실하고 특별한 하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완벽하게 반대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자아와 죗값
발람을 온전히 미워할 수 없는 이유
극의 중후반으로 도착한 발람에게 주인들의 비인간적인 제안이 떨어진다. 주인이 지은 죄를 대신해서 뒤집어쓰라는 것이다.
발람을 고유한 개체로 취급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서 그는 혼란과 분노를 반복한다.
종국에는 비윤리적인 제안을 받고 어떠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은 자신의 노예성에 대해 깨닫는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발람을 짓누르며, 아무런 죄를 짓지 않고 그저 자신의 주인을 모시는 것이 목표인 세계는 날카롭게 깨진다.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그를 괴롭게 하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죄를 저지른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신분적인 한계를 벗어날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 얻은 돈을 통해 발람은 사람들을 매수하고, 사업을 시작한다.
불법적으로 합법적인 운명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발람은 직원을 하인으로 부리지 않고 존중하는 형식의 사업 방식을 고수한다.
사업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발람은 성공한 사업가로 변모한다.
발람은 고향에 남겨진 가족을 떠올리기도 않지만 그들의 안위를 알 수 없다. 자신을 찾아온 조카와 함께 기약 없는 미래를 꿋꿋이 걸을 뿐이다.
발람은 렌즈를, 그 이후의 우리를, 세상을 보며 이야기한다. 닭장 속에 갇힌 건 누구냐고. 당신들은 그곳에 발 묶여있지 않고 자유롭냐고.
<화이트 타이거>는 악인과 선인의 구분이 없다.
선악은 모습을 변주하며 개인의 욕망을 위한 윤활유가 될 뿐이다. 발람의 각성에도 선한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마냥 비난할 수도 없다.
그건 아마 발람이 가진 한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분명히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발람은 가난과 계급에 묶여있었지만, 현대 사회 역시 각각의 이유로 불합리함과 분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이트 타이거>의 러닝타임 내내 압도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완벽하게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일까.
작품이 말을 거는 방식은 거칠고 날카롭지만 통렬하고 확실하다.
해결되지 않은 찝찝함, 그러나 발람이 진정한 '화이트 타이거'가 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수작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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