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 익스클루시브 드라마 <체르노빌>의 포스터. 출처 IMDB


[OTT뉴스=조수빈 OTT 1기 리뷰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이 뜨거운 감자다.

말 많은 이번 결정으로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관심이 쏠리는 한편, 20세기 최악의 사고였던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시금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35년 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체르노빌 사고는 어땠을까.

드라마 장인 HBO가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을 통해 참혹한 당시를 숭고하게 재현했다.

메마른 우화적 실화

KGB 국장과 면담 중인 발레리 레가소프(자레드 해리스 분). 출처 IMDB


1988년, 한 남자가 6개의 녹음테이프를 숨겨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발레리 레가소프(자레드 해리스 분)라는 한 과학자의 폭로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그의 녹음테이프를 재생하듯 고요히, 사실적으로 흘러간다.

<체르노빌>은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의 전말과 그에 대한 정부 관료, 과학자, 소방관, 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담았다.

피폭당한 직원을 보고도 사고를 부정하는 원자로 발전소 부소장 아나톨리 댜틀로프(폴 리터 분), 심각성을 망각하고 사건을 덮기 급급한 정부 관료들, 원자로 지붕에서 흩날리는 재를 보며 한겨울 눈을 맞듯 즐거워하는 시민들, 적절한 보호 장비 없이 폭발의 잔해를 처리하는 소방관.

모두가 앞다퉈 죽음을 자초하는 순간들이 처연하고도 섬뜩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들에게 맺히는 인간적인 감정들에 치중하지 않는다.

대신, 피폭될 줄 알면서도 원자로로 향했던 영웅들을 거룩하게 기리고, 객관적인 눈으로 사고의 원흉을 심판하려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을 두 문장으로 정리한다.

"체르노빌 사건에서 정상적인 건 없었어요. 거기서 일어난 일련의 과정은 옳은 일마저도 전부 광란이었으니까"

발전소 지붕에 난 불을 끄러 온 소방관. 출처 IMDB


시시각각 바뀌는 긴박한 상황에 맞추어 장면들이 분 단위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산만하지 않다.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고 건조하게 일관한다.

이런 연출은 섬세한 고증으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실존 인물을 닮은 배우들의 외모는 물론, 의상, 차량 번호판까지 그대로 재현한 것.

켜켜이 쌓아 올린 디테일은 장장 5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체르노빌>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대사이자 드라마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드라마는 레가소프의 입을 빌려 거짓의 대가를 자문하고, 절차를 무시한 관료주의와 무능한 전체주의의 병폐를 낱낱이 고발한다.

숨죽인 5시간이 지나면, 레가소프의 대사 하나하나가 시린 경고로 와닿는다.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아나톨리 댜틀로프(폴 리터 분)이 터빈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출처 IMDB


"거짓을 계속 듣다 보면 진실을 보는 눈을 완전히 잃는다"라는 극 중 레가소프의 말처럼, 실제로 발레리 레가소프는 죽기 전까지 체르노빌 사고를 둘러싼 정부의 은폐를 폭로하고 진실을 밝히려 했다.

그리고 정부는 그의 죽음 이후에야 원자로의 결함을 인정했다.

체르노빌의 직접적인 방사선 누출로 인한 공식적인 사망자는 56명이다.

그러나 간접적인 피해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체르노빌은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을 때가 아닐까.

HBO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은 왓챠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