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타이틀. 사진 JTBC DRAMA 캡쳐
[OTT뉴스=윤정원 OTT 1기 리뷰어] '일사부재리의 원칙', '위법성 조각 사유'...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해진다.
하지만 이 단어를 유튜브 보듯 보고, 숨 쉬듯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법조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누군가는 법조인의 일을 '퍼즐 맞추기'에 비유한다.
증거와 증언, 단편적인 진술만을 듣고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는 모습이 퍼즐조각을 완성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인데 문제는 이 퍼즐이 장난삼아 맞출 수 있는, 쉬운 퍼즐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퍼즐과는 다르게 동봉된 완성본이 없고, 퍼즐 조각의 개수가 모자랄 수도, 또 넘칠 수도 있다.
변호사와 검사는 판사에게 자신이 맞춘 그림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오늘도 날 선 대립을 이어간다.
어려운 법정용어를 일삼는 이들의 삶은 소위 그사세, 그들이 사는 세상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 당사자인 개인 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삶의 방향성은 온전히 달라질 수 있다.
낙태죄 위헌판결을 비롯해 호주제 폐지, 동성동본 결혼제도 폐지만 생각하더라도 재판의 영향력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바르고 정확한 퍼즐을 만들기 위한 법조인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금일 4월 25일 법의 날을 맞아 수준높은 법정물, JTBC 드라마 <로스쿨>을 OTT뉴스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비밀의 숲>은 대한민국 법정물의 품격을 높인 수작으로 평가된다. 사진 TVING
'법정물'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 변호사 혹은 검사가 등장해 무죄 혹은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그 주변엔 재밌거나 성실한 수사관들이 따라다니며 사건을 보조하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한국의 법정물은 뻔하다는 평이 많다.
이런 설정은 형사물의 고정적 이미지와도 유사한데, 액션과 스릴러와 같은 화려한 볼거리들이 형사물에 더 많기 때문에 법정물은 드라마의 단편적 에피소드로 등장할 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변호사와 검사의 이야기가 아닌 판사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 <이판사판>이 방영되기도 하고,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검사 캐릭터가 주목을 받으며 법조인 드라마에 대한 국내 인식이 상승했다.
특히 <비밀의 숲>에서는 다채로운 검사 캐릭터를 선보여 국내 드라마에서 검사가 지닌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 국내 드라마에서의 검사 캐릭터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탐정의 이미지로 소비됐다.
하지만 <비밀의 숲>에서는 천재 검사 황시목, 비리 검사 서동재, 신입 검사 영은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며 시청자에게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채널 A의 관찰 예능 <굿피플>에서 인턴 변호사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법조인이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올 수 있게끔 공헌했다.
K-드라마에서 변호사와 검사는 수많은 작품을 거쳐 입체적인 캐릭터로 변화해 온 것이다.
<로스쿨>에서 로스쿨 교수를 양종훈을 연기한 김명민, 사진 JTBC DRAMA 유튜브 캡쳐
그렇다면 <로스쿨>에서의 검사는 어떨까?
이번 주에 4회 방송까지 마친 드라마 <로스쿨>은 어렵지만 신선하다.
<로스쿨>은 법을 배우는 학생들과 양크라테스, 양종훈 (김명민 분) 교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어려운 법정 용어를 사용하며 토론하는 학생들의 모습, 모의재판 등 법정물에서 종종 보일 법한 장면들이 두루 보인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기존 청춘드라마처럼 학생들의 극적인 성장과 꿈에 대해 크게 다루지 않는다.
또한 법정에서 사투를 벌이며 CCTV와 증거에 목숨을 걸지도 않는다.
로스쿨 학생들의 성장과 재판은 그저 하나의 볼거리일 뿐이다.
외려 극을 이끄는 핵심 소재는 서병주 (안내상 분) 교수 살인사건과 그것과 관련된 아동성범죄자와 뺑소니 사건이다.
개별적인 사건이 점차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어가며 드라마는 추진력을 얻는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신선하다.
법정물의 교과서 <굿와이프>처럼 변호사 주인공이 매 회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형식을 벗어나 법조인 드라마는 법정 싸움이라는 공식을 깨버린 것이다.
여기에 모의재판이라는 요소를 첨부해 법정 다툼을 예상했던 시청자들의 갈증을 채워줌과 동시에 수많은 로스쿨생도들의 캐릭터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류혜영은 특유의 연기력으로 신데렐라로 여겨질 법한 강솔A 캐릭터를 훌륭히 살리고 있다. 사진 JTBC DRAMA 유튜브 캡쳐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몇 군데 눈에 띈다.
첫 화에서 양종훈 교수의 소크라테스 학습법에 대한 과한 연출은 극의 몰입을 방해함과 동시에 김명민이 과거 연기했던 <베토벤 바이러스>의 지휘자 캐릭터를 연상시켜 다소 뻔하다는 느낌을 줬다.
나아가 사회소외계층 전형으로 들어온 강솔A(류혜영 분)의 캐릭터는 다소 밋밋하고, 전형적인 신데렐라 캐릭터로 느껴진다.
사법고시 2차를 통과한 캐릭터인 한준휘 (김범 분)와 동급생 서지호 (이다윗 분)의 미묘한 대립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전형적인 천재와 2인자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뻔히 보이는 캐릭터성은 극을 지루하게 만드는 큰 요인인데, <로스쿨>은 왜 이런 장치를 선택한 걸까?
해답은 <로스쿨>의 서사 전개방식에 있다.
<로스쿨>은 과거 회상이 자주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양 검사와 서 검사 사이의 관계 변화, 아동 성범죄 사건 등을 단편적으로 제시한다.
여기에 양크라테스 식 형법 수업과 어려운 법정 용어는 시청자들이 단순히 극을 이해하는 범주를 넘어서 피로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로스쿨> 제작진 입장에서는 피로감을 줄이는 방법으로 명확한 캐릭터성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는 꽤 영리한 방법이었는데, 명확한 캐릭터성을 기저에 뒀기에 사건 전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효과를 냈다.
강솔A은 양 교수와의 로스쿨 면접에서 지원동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법한테 사과를 받고 싶어서요"
언니를 폭행한 사람에게 주먹 한 대를 쳤지만 외려 폭행죄로 고소당하며 합의금 100만원을 물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돈도 없고 백도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강솔A.
스포츠 스타를 비롯한 연예계에서 학교폭력 게이트가 열린 지금, 법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는 강솔A의 질문은 꽤나 시의적절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법은 정의로운가? 법조인들의 퍼즐은 올바르게 맞춰지고 있는가?
앞으로 수많은 퍼즐을 맞춰나갈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한편 JTBC 드라마 <로스쿨>은 매주 수, 목 오후 9시에 방송되며 이후 넷플릭스와 티빙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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