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려라, 2020년>의 포스터. 출처 IMDB

[OTT뉴스=조수빈 OTT 1기 리뷰어] 2021년의 3분의 1이 지났다.

해가 바뀌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 대유행은 여전히 굳건하고, 우리의 지구는 매일 40억 개의 마스크로 더욱더 갑갑해지고 있다.

4월 22일 지구의 날 51주년을 맞아, 지난해 지구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들여다보자.

코로나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 해였지만, 사실 2020년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이런 역사적인 해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 미러>의 제작진.

2020년이 '똥 뿌리는 폭주 기관차라고 하면, 똥에게도 기차에게도 실례'라며 특유의 냉소를 듬뿍 담은 모큐멘터리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2020년, 너무 중요해서 20이 두 번 들어가는 해입니다"

현실과 허구가 묘하게 어우러진 모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가버려라, 2020년>.

2020년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전문가, 정치꾼, 비선 실세, 군주, 과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평범한 시민의 반응을 담았다.

틈틈이 끼워 넣은 실제 자료화면 덕분에 넋 놓고 보다 보면 현실처럼 느껴지지만, 인터뷰는 어디까지나 페이크(가짜)다.

뉴스 리포터(새뮤얼 L. 잭슨 분)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출처 IMDB


휴 그랜트, 새뮤얼 L. 잭슨, 리사 쿠드로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로 분해 씁쓸한 블랙 코미디를 연출한다.

배우들을 잘 모른다면 실제 전문가로 오해하기 딱 좋다.

말 바꾸는 대통령 대변인이나, 조회수를 위해 사회적 이슈에 공감하는 척하는 리액션 유튜버는 현실에도 차고 넘치니까.

쌍욕 연기의 대가 새뮤얼 L. 잭슨이 과하게 직설적인 리포터 역할을 맡은 것은 신의 한 수라고 하겠다.

표현의 자유란 바로 이런 걸까

<가버려라, 2020년>은 거침없는 풍자로 2020년을 풀어나간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영화 <스타워즈>의 내용을 현실과 혼동하는 역사학자, 전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을 위한 생존 벙커나 만든 부유한 CEO 등을 통해 허울만 좋고 실상은 무능한 전문가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린다.

역사학자(휴 그랜트 분)가 술병을 옆에 둔 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출처 IMDB


그뿐만 아니라 SNS에 떠도는 음모론에 선동당해 스스로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인 줄 아는 인종차별주의자, 미 대선 기간의 뉴스를 막장 TV 시리즈로 착각한 시민 등 사회 현실에 무관심한 시민들을 비꼬기도 한다.

과장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시청자 중 누구도 풍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기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서구 사회 중심으로 풀어나간 점이 우리로서는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 5위 안에 드는 시민(다이앤 모건 분)이 TV 채널을 돌리고 있다. 출처 IMDB


궁극적으로 이 모든 풍자의 화살은 정부로 향한다.

작품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반인반돈(半人半豚)'이라고 칭하고 영국의 브렉시트를 '브렉시트 겸 자멸'이라고 표현하는 등 정부 이슈에 대해서는 어휘 선택이 무척 과감하다.

또한, 무능한 전문가조차도 정부를 무능하다고 평가하는 모습을 통해 정부의 위신을 무생물인 '양말이나 풍선'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줄거리가 산으로 갔다고 생각했어요"

미 대선 관련 뉴스를 막장 TV 시리즈로 착각한 한 시민의 말처럼, <가버려라, 2020년>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현실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낯 뜨거운 토론, 보리스 총리의 연설 장면을 보고 있으면 무엇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헷갈릴 정도니까.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트레이시 울먼 분)이 해리 왕자 부부의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접하고 경악하고 있다. 출처 IMDB


호주 산불 사태로 시작해 코로나를 거쳐 미 대선까지. 2020년의 지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회전했다.

산으로 가는 전개 속에서 다행히 한 가지 발전적인 사건도 있었다. <기생충(2019)>의 아카데미 4관왕이 바로 그것이다.

<가버려라, 2020년>은 이를 '백인 1만 명을 절망에 빠뜨린 사건'으로 꼽기도 했지만, 5천만 한국인만큼은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제작진은 2021년을 주제로 같은 포맷의 작품을 또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남은 2021년의 줄거리는 어떻게 전개될까.

2020년에 대한 황당한 논평 <가버려라, 2020년>은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