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박스>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OTT뉴스=손민지 OTT 1기 리뷰어] 사회 초년생 시절, 눈물을 소리 없이 흘리는 법을 배웠다.
매일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일했지만 오로지 나 혼자 외딴 섬에 남겨진 기분으로 일을 했다.
힘들다고 털어놓을 상대가 없어 외로웠고, 내가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차가 끊긴 새벽에야 사무실에서 나오면 대로변에서 추위에 덜덜 떨며 고민했다.
택시를 탈까 아니면 근처 찜질방에 갈까. 찜질방에서 하룻밤 자는 비용보다 택시비가 더 비쌌다.
큰맘 먹고 택시를 타는 날이면, 폭신한 의자를 침대삼아 기대어 눈을 감았다. 하루 중 유일하게 평화로운 시간.
창으로 비치는 오색빛깔 불빛들을 안주 삼아 그날의 서러운 기억을 눈물로 씻어냈다.
그 소리 없는 눈물은 오랜 세월 꾹꾹 눌러온 마그마가 폭발하듯 용솟음쳤고, 아우성보다 강렬했다.
그때는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는지, 처음 마음 가짐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오직 이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죽음보다 큰 공포는 '고립'
눈을 가리고 아이들과 함께 강을 건너는 맬러리. 사진 넷플릭스
SF 스릴러 <버드 박스> 속 맬러리(산드라 블록)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녀는 '보이'와 '걸'을 지켜내야 한다.
맬러리는 오로지 감각을 통제하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 벗어날 방법만을 생각한다.
'소리를 내면 괴물에게 죽는다'는 설정의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는 가족이 함께 위기에 대응하지만 버드 박스의 맬러리는 혼자 어려움과 싸운다.
눈을 감은 채 이 현상을 받아들여야 하기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생존자들과 연결될 수 없다.
맬러리는 꼭 내 편이 없는 것처럼 외로웠던 사회초년생의 나와 닮아있다.
생존을 향한 의지만 남아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은 것 같은 허전함에 몸부림치는 바로 그 모습이.
새장 속에서 자유를 꿈꾸다
또 맬러리가 처한 상황은 마스크에 의지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어서 더욱 몰입하게 된다.
영화는 괴생명체가 '왜' 나타났는지, 집단 자살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하는 대신 괴생명체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준다.
눈을 가린 안대 시점 샷으로 우리는 맬러리에 이입해, 앞이 보이지 않는 듯한 공포를 느낀다.
영화는 괴생명체의 실체조차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소용돌이치는 바람과 소리에 괴생명체가 나타났음을 암시할 뿐이다.
우리도 밖을 나설 때마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낯선 상황에 놓여 '바이러스'라는 존재가 휘젓고 간 흔적만을 마주한다.
알 수 없는 원인 불명의 무언가에 의해 삶의 일부를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다.
대체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더 큰 위기가 닥치지 않을지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다.
그 속에서 버티고 견뎌내기 위해 마스크 한 장에 의지해 숨을 쉬고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한다.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는 한, 우리는 자유롭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된 사회에 만족해야한다.
이러한 현실에 위로의 목소리를 건네듯, 버드 박스의 스핀오프 영화가 올해 말부터 스페인에서 제작된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은 <캐리어스>(2009), <라스트 데이즈>(2016),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의 집으로>(2020) 등을 연출한 알렉스와 데이빗 파스트로 형제 감독이 맡는다.
영화가 개봉하면 한번쯤 관람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새장(버드 박스)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조언을 영화에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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