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욕의 품격'을 진행하는 니콜라스 케이지. 사진 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OTT뉴스=장혜연 OTT 1기 리뷰어] "F**k are you lookin' at?(염병, 뭘 꼬나 봐?)"
비장한 음악, 정장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선 진행자, 웅장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라는 타이틀과 함께 시작하기에는 꽤 자극적인 첫 마디다. 강렬하게 시작한 이 시리즈는 '욕'을 다룬다.
학창 시절 당신의 영어 수업 시간, 또는 제2 외국어 수업 시간을 떠올려 보라. 당신은 선생님에게 '욕 좀 가르쳐 주세요!'라는 말을 몇 번이고 했을 것이며, 끈질긴 졸라댐을 거쳐 선생님의 아량으로 어쩌다 겨우 한 단어를 배우게 되면, 복잡한 문법 규칙은 다 잊어도 그 단어만큼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지만, 가장 궁금한 존재였던 '욕'.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단 한 음절로 표현하는 도구인 욕은 그 어떤 단어보다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강력한 존재다.
넷플릭스의 코미디 다큐멘터리인 <욕의 품격>은 어두운 뒷골목에서, 또는 19금 딱지 뒤에서 웅크리고 있던 강력한 존재를 양지 중에서도 눈이 부신 양지로 꺼낸다.
1. 이 단어, 방송 가능해요?
이 프로그램에서는 그 누구도 욕을 하는 데에 있어서 쭈뼛거리지 않는다. 욕은 가장 근본적인 감정을 터뜨리는 데에서 오는 쾌감을 준다.
이 쾌감이 강렬한 이유 중 하나는 '금기'에 있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TV 속 아나운서도 나에게 욕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욕을 뱉을 때 느끼는 쾌감의 크기가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욕을 하는 것은 일종의 '길티 플레져'다. (길티 플레져: 어떤 일에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이를 즐기는 것)
그렇기에, 언제나 어둠의 존재였던 욕을 밝은 조명 아래서 진지하게 쏟아내는 학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새롭다.
'학자'와 '상스러운 말'에서 오는 괴리는 상당히 신선하고 큰 충격을 준다. 어떤 장면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핵심이었다. 어느 출연자든 '이 단어, 방송 가능해요?'라고 묻지 않고 욕부터 한다.
가만히 앉은 학자들과 유명 코미디언이 19금 딱지나 '삐' 처리에 신경 쓰지 않고 큰 목소리로 욕을 하는 모습은 커다란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를 가두던 사회의 답답한 틀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지식의 권위가 엄격한 규율을 무너뜨리고 부도덕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목격하는 데에서 오는 통쾌함,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는 코미디언들에 대한 부러움이 웃음으로 이어진다.
내용 자체만 웃긴 것이 아니다. 언제나 숨겨왔던 소재를 연표와 자막, 공식적인 사료를 화려하게 사용해가며, 또 F**k 랭킹 1위를 섬세하게 뽑아가며 '금기'를 당당하게 전면에 드러내는 자체가 통쾌하다.
욕의 품격 캡처. 사진 넷플릭스
2. 욕이 필요한 시대
의외로 진지하게 우리를 욕하게 만드는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가장 간결한 단어에 가장 많은 생각을 담아 반권위를 외치는 욕의 역사를 훑어가면서, 욕이 아니고서야 나의 울분을 토할 수가 없는 사회의 단면을 떠올린다.
욕할 때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고 한다. 이 아드레날린이 손끝 발끝으로 피를 흐르게 하면 고통을 견디기가 쉬워진단다.
욕이 유구한 역사를 거쳐 복잡하게 진화했다는 것을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고통이 그만큼 더 복잡해졌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겠다.
현실은 슬프지만 니콜라스 케이지가 조금 무거운 얘기를 할 때조차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별별 욕이 다 나오는 영화 속 장면들이 위트있게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때문이다.
오늘도 몇 번이나 속으로 욕을 삼키느라 고생한 당신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는 코미디 다큐멘터리다.
옥상에 가서 하늘을 보며 "F**K!!!"이라고 크게 외치고 싶지만, 꼼짝없이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 보자.
쓸데없는 지식으로 뇌를 흥분시키려는 사람, 기발한 욕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싶은 사람, 퇴근 후 다큐멘터리 본다고 자랑은 하고 싶지만 고지식한 내레이션을 들으며 졸고 싶지는 않은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팁을 주자면, 영어 자막을 켜면 아무런 검열 없이 '욕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