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세상에서 사랑하는 법 <이 구역의 미친 X>

카카오TV, 넷플릭스: <이구역의 미친 X>

박정현 승인 2021.08.10 06:49 의견 0
<이 구역의 미친 X> 공식 포스터. 사진 카카오TV


[OTT 뉴스=박정현 OTT 1기 리뷰어] 뉴욕 맨해튼 최상류층 자녀들의 화려한 라이프를 다룬 미국드라마 '가십걸'의 명대사다.

우리나라에선 최고 시청률 35.2%에 달하는 인기드라마 '시크릿 가든' 속 대사로 기억되는 "이 구역의 미친 X는 나야".

이 한 줄의 대사가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이유는 단 하나, '당당한 똘끼' 때문일 터다.

감히 내가 호락호락 당할 리 없다는 근자감, 누구든 날 건드리면 아주 X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날 선 경고는 고구마로 가득한 일상에서 사이다로 느껴지기 적격이다.

노휘오(정우 분)를 우산으로 막는 이민경(오연서 분). 사진 카카오TV 유튜브 캡처


바로 그 대사를 드라마 타이틀로 만났을 때 사실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분노조절 0%'의 남자와 '분노유발 100%'의 여자, 분노조절장애와 강박·망상증의 만남이라니...

자칫하면 유치해지거나 논란의 여지가 많겠다는 생각에 예고편만 보며 시청을 망설였다.

어느 날, 스트레스를 풀고픈 마음에 충동적으로 플레이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면 필자는 꽤 오래 이 드라마를 묵혀뒀을지도 모른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1화 엔딩까지 한순간이었다.

회당 러닝타임이 30분 내외로 짧은 편인 데다 전개가 빠른 편이었다.

딱 미치기 좋은 비 오는 날 우연히 만난 노휘오(정우 분)와 이민경(오연서 분)의 우연한 마주침이 반복될 때마다 일이 꼬이고 오해가 쌓여가는 걸 보며 때론 발을 동동 구르며, 때론 박장대소하며 순식간에 다음 화, 다음 화로 향하고 있었다.

1화에선 단지 미친 사람처럼 보였던 휘오의 사연이 2화, 민경의 사연이 3화에 자세히 나오면서 그들을 서서히 이해하게 되는 지점이 좋았다.

몰랐을 땐 낯설고 이상해 보였던 행동과 말투가 알고 보니 서글프고 처절한 몸짓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몰랐을 땐 어처구니없기만 했던 것이 알고 나니 웃기면서 슬프기도 했다.

노휘오(정우 분)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이민경(오연서 분). 사진 카카오TV 유튜브 캡처


결국엔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서 미쳐버린 거니까.

돌이켜보면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타인을 탓하지 못하는 자들이 결국 미치기 쉽다.

남 탓하며 욕하고 침 뱉으면 끝인데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한번 머릿속에 끼어드는 순간 늪에 빠지게 되니까.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과거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붙여 수없이 되새기고, 돌아보며 자신을 의심하고 원망하다 보면 점점 더 늪에 깊이 빠져들 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건지도 잊은 채 깨져버린 '나'라는 거울을 붙이려 애쓰다가 그 날 선 조각으로 스스로를 찌르지 않으려면 방어막을 세우는 수밖에.

어쩌면 그 방어막이 타인의 시선에선 미친 거로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어쩌면 "이 구역의 미친 X는 나야"라고 당당하게 말한다는 건 동시에 '그러니까 나 좀 봐줘'라는 속삭임이 함께 담겨 있는 건 아닐까.

이민경(오연서 분)에게 호흡법을 알려주는 노휘오(정우 분). 사진 카카오TV 유튜브 캡처


서로 다른 듯 닮아 있는 휘오와 민경은 그들을 미치게 만든 세상의 중심에서 비슷한 아픔을 매개로 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돌아보며 서서히 사랑하게 된다.

혹자는 우연히 만나 오해가 거듭되며 앙숙이 됐다가 결국 오해를 풀고 사랑하게 되는 로맨틱 코미디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남녀주인공에만 살짝 변화를 준 게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할지 모른다.

물론, 그 말도 맞다. 이 드라마는 강렬한 소재에서 기대됐던 것보다는 다소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물로 진행되며 '매운맛'보다는 '순한 맛'에 가깝다.

허나 이미 미쳐버린 남녀라는 주인공부터 '매운맛'인 상황에서 강렬한 전개로 '마라맛'이 된다면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와도 부딪히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필자는 이 정도의 전개도 괜찮다고 본다.

다만, '분노조절 0%'라는 설명에 비해 노휘오의 감정조절이 원만하고 다혈질 정도로 보여서 캐릭터성이 다소 붕괴된다는 점과 뒤로 갈수록 사건 전개가 예상 가능해진다는 점은 아쉽다.

허나 아직 결말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니 남아 있는 회차에서 노휘오의 캐릭터성이 빛을 발하는 '마라맛' 장면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끝까지 기대하며 달려보겠다.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는 카카오TV 또는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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